신목(神木)
/손세실리아
동백나무를 마당에 들였다
외래종 색색 겹꽃이 아니라
토종 빨간 홑꽃이란 농장주 말에
흥정도 않고 데려온 게다
드센 해풍이 걱정됐지만
별 탈 없이 자릴 잡고 꽃눈도 실해
한시름 놓던 중인데 갑자기
봉우리인 채로 꿈쩍 않는다
나무의 속내를 알 바 없으니
기다릴밖에 지켜볼밖에
그러길 얼마나 흘렀을까 드디어
만개했다 헌데 황당하게도 희다
집주인의 비밀스런 사랑※을 눈치채곤
몇 날 며칠 끙끙 앓다
백지장처럼 창백해져
결국 폭로를 감행한
※ 조선흰동백의 꽃말
시인을 2년 전 제주에서 어색하게 조우한 기억이 난다. 인동초 시나리오 작업으로 내려앉은 제주도가 회억의 시간들로 아련히 기억에 찾아든다. 봄이 옷을 입고 종종걸음으로 오는 시간, 눈 속에서 향기를 피우는 매화를 앞세우고 봄의 전령사들이 오고 있다. 빨간 꽃을 기대하며 심은 동백나무에서 흰 꽃이 피었다. 신과 나무가 시침 뚝 뗀 채 한통속이 되어 지켜보았던 걸 화자만 모르고 있었나보다. 어쩌면 우리도 살아가면서 전혀 의도하지 않고, 뜻하지 않았던 일을 만나기도 할 것이다. 애면글면, 그렇게 꽃이 피고 봄이 오고 우리들 삶도 흘러가는 중이다. 세상사가 자기 노력으로 다 해결되지는 않는다. 꽃말처럼 세계관이 성숙했을 때 뜻이 맞는 사람이 진짜 친구라고 해도 신비스런 동경들이 일어난다. 시인의 인연처럼 살며 사랑하며 배우는 일이다. /박병두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