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조직의 운영을 책임질 대표와 임원은 소속 구성원들로부터 적법한 절차를 거쳐 선출 혹은 임명을 받는다. 한 나라의 수장은 왕 세습이 아닌 한은 국민이 선출하며 선출된 사람은 정해진 임기동안 국가를 치리하고 운영을 하게 된다. 대통령일지라도 직무를 수행하는 중에 권력을 남용하여 헌법을 위반하게 되면 적절한 법 절차를 통해 탄핵을 받게 된다. 국민들은 매스컴을 통해 나라의 동태변이와 기타 다양한 정보를 통해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관한 판단을 하게 된다. 어느 중대한 사건을 계기로 국민의 80% 정도가 대통령의 직무수행 역량에 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는 믿을만한 통계가 나오면 대통령은 많이 억울할지라도 이것에 관한 정직한 해명을 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미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어 통치 권위가 상실되었다면 아무리 정직한 해명일지라도 대통령은 국민을 설득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쥔 권력을 한 순간에 내려놓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권력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하게 된다는 것보다는 자신의 명예가 한 순간에 추락하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국민을 설득할 만큼의 적절한 해명을 하지 못해 결국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을 판결 받았다. 그리고 구속되었다. 억울하다고 하면서 명예회복을 위해 소송을 할지라도 이미 대다수 국민의 감정과 정서가 그의 곁에 있지 않다는 것이 중요하다. 명예를 회복하려는 자가 타인들의 신뢰 없이 이러한 소송만을 거듭한다면 더 깊은 수렁에 빠져 들어가게 된다. 어쩌면 당사자는 억울함에 눈이 가려 이것을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되찾고자 하는 것은 명예회복일 텐데 이것도 사건과 상황에 따라 회복이 가능한 것이 있고 불가능한 것이 있다. 이 일은 대통령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이와 같은 등식이 적용된다.
어린 나이에는 실수를 해도 회복할 기회가 많이 있지만 나이가 들어 실책을 하게 되면 회복할 기간도, 그 기회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다급한 나머지 서둘러 회복하려고 무리를 하게 되면 회복은커녕 더 큰 불명예만 쌓기 쉽다. 재판을 통해서 명예를 회복하려고 하지만 법적으로 명예회복을 하는 것과 민심을 통한 명예회복은 다르다. 특히 60세가 넘어 명에가 실추된 사안이 법률 위반 여부 때문이라고 할지라도 이미 인심을 잃은 사안이라면 당사자는 법적 판결을 떠나서 장기간 자숙하면서 선행을 통해 그나마 어느 정도 명예회복이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과거에 백담사에 갔었다. 왜 속세를 떠나 설악산 사찰까지 가서 한동안 살림을 했었는지 새삼 의심이 들 만큼 백담사를 나온 후 오늘까지 그가 자숙을 해오고 있다는 소식도 어떤 선행을 했는지에 대한 소문도 없다. 다시 억울함을 호소하는 듯 자서전을 발간했다는 소식만 있다. 명예회복을 위한 자서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자서전이 그 사람의 명예를 회복시켜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그 사람 식구와 가까운 주변인물들 밖에 없을 것 같다. 당장은 아닐지라도 후세에 사료를 남기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자서전을 냈다면 후대에 누군가 그 자서전에 기록된 내용들의 신빙성을 따져 묻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혹 누군가가 염*하네 라고 하지 않을까 싶다.
간혹 물질과 권력과 명예, 이 셋 중에서 무엇을 택하겠느냐며 질문 같지 않은 질문을 하는 유치한 어른이 있다. 이 셋은 각기 독립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처럼 한 몸이다. 현대사회에서 청렴한 사람은 부와 권력에 대한 욕망도 없겠지만 아무리 막강한 권력과 부를 지녔다고 해도 황희정승 같은 청렴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명예는 없는 것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각 층의 지도자들의 제 일 덕목은 청렴이다. 이 이유 때문에 국회에서는 높은 공직에 앉을 사람을 청문하는 것이다. 인사가 능사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도자들 주변에 인력 풀이 옹색한 것은 능력이 있다고 소문난 사람들 대부분이 과거 청렴의 문제로 인해 청문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고위직에 있는 사람일수록 한 번 잃은 명예는 결코 원상회복되지 못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민심이 천심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에게 청렴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겠지만 곧 대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