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저수지 바닥이 드러나고 농작물이 메말라가고 있는 모습이 뉴스마다 보도되었다. 사무실에서 법정까지 걸어가는 아담한 등산로 길은 걸음 걸음마다 먼지가 솟아올랐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소방차의 논에 물 대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며칠 사이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굵고 힘차게 운전석 유리창을 때리는 빗줄기를 보니 가뭄을 염려했던 기억이 싹 사라진다. 지난 겨울 그렇게 매서웠던 칼바람 맞으며 더운 여름을 고대했는데 이젠 열대야를 견디며 눈 내리던 아파트 화단을 그려본다. 세상사 음지와 양지가 있으니 전직 권력자들의 법정을 향하는 초췌한 얼굴 위로 청문회 자리에서 호통 받는 미래 권력자들 머리 조아리는 장면이 지나간다. 지혜로운 재판장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솔로몬 왕은 인생의 말년에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토로했으니 가뭄과 장마 속에 인생의 근본을 생각해 본다.
언제나 청춘인양 몸의 변화를 외면하면서 매주 축구화를 챙기고 등산복을 정리해 보지만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안과도 들리고 치과도 예약하게 된다. 마치 종합병원처럼 사람들이 꽉 들었지만 안과 의원을 가보니 최신 장비가 전문 직원의 손길이 거쳐 불편한 시야 상태를 적나라하게 현실로 보여준다. 이제까지 고생해준 수정체를 빼내고 그 자리에 인공수정체를 넣어야 한다니 다소 충격으로 다가온다. 일단 안과 수술을 결정하고 날짜를 잡았지만 아직까지는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어 기어코 전화를 걸고 예약을 취소한다.
가뭄이 끝나면 언젠가는 장마가 오고 태양이 지나가면서 음지였던 곳은 양지가 된다. 물론 늘 음지인 곳도 있지만 그 나름대로 다 적응하게 된다. 다양한 각양각색의 고민거리를 안고 변호사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 때론 체념하고 때론 분노하고. 세상에 내 의지로 될 수 없고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얼마 전 U 월드컵 결승전 현장을 관람하며 나는 주무시던 중 말없이 하늘나라 가신 어머니를, 친구는 얼마 전 아파트에서 갑자기 하늘의 부름을 받은 마누라를 얘기하느라 서로 눈물 적시기도 했는데 이러한 애틋한 사연이 우리 인생을 진지하게 바라보게 하고 생각을 풍부하게 해주는 듯하다. 가족으로부터 배신당하고 동업자로부터 금전적인 피해를 입고 하늘이 원망스럽더라도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방법을 훈련하자.
장래 희망이 변호사인 중1 학생들 5명이 사무실을 방문했다. 사회가 발전되어 다양한 새로운 직업군이 생겼고 인기 있는 직업들 순위도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어 버린 세상이 되었기에 존경과 선망의 눈길로 나에게 다가오는 앳된 친구들이 무척 반가웠다. 이런 기회에 새삼 내가 하는 일의 보람과 긍지를 생각하게 된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진정 나에게 행복을 안겨주고 삶을 빛나게 하고 있는가? 내가 다시 청소년 시절로 돌아가 장래희망을 꿈꾼다면 어떤 이상을 품게 되며 치열한 경쟁 속에 과연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회의가 든다. 그렇다. 소중한 건 바로 지금이니 아쉬움은 털어 버리고 이들이 꿈꾸는 이상을 지금 내가 실현해 나가보자.
전 주인이 영업을 포기한 가게를 인수하여 새 간판을 달고 힘차게 막 출발한 시원한 커피숍에 홀로 안자 이 글을 쓰면서 젊은 사장님의 도전에 나도 도전받으며 2017년 후반기를 구상해 본다. 겉치레가 아닌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고 조금만 더 배려하며 호의를 베푸는 성품으로 성숙해 가자. 그늘은 작게 생각하고 밝은 희망적인 면을 더 크게 바라보자.
올해 절반은 지나갔지만 아직 나머지 절반이 남아있다. 전반기가 가뭄과 같았다면 후반기는 장마와 같을 수도 있다. 아직 가뭄이 끝나지 않았다면 언젠가 끝날 시점이 있을 것이니 희망의 끈을 놓지 말자. 친구들과 만나더라도 지난 일을 얘기하기 보다 지금 하는 일과 다가올 미래에 대해 구상하고 꿈을 나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