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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레오나르도 vs 미켈란젤로

 

1504년 피렌체의 대정부 대회의장에서는 모두가 주시하는 가운데 세기의 경쟁이 벌어진다. 폭 20m의 대형 벽면 두 개가 준비되었는데, 한쪽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다른 한쪽은 미켈란젤로가 채울 예정이었다. 당대 유세 있는 문벌가문들을 물리치고 권력을 잡은 정부는 이 결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자 했다. 당시 레오나르도는 이미 원숙기에 접어 든 중년의 예술가였던 반면, 미켈란젤로는 그보다 20살 어린, 근래 급부상한 젊은 예술가였다. 결국 이 결투는 중도에 중단된 채 끝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 후대인들에게 이 일화가 지속적으로 회고되는 이유는 어마어마한 천재화가들이 맞붙었던 세기의 결투이기도 했거니와, 그 결과를 알지 못했던 아쉬움 때문일 것이다. 만약 승부가 끝까지 진행되었다면 아무래도 그 결과는 레오나르도에게 유리했으리라. 레오나르도는 여러 예술 분야 중에서 단연 회화를 으뜸으로 여겼고, 회화를 통해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올라있었다. 반면 미켈란젤로는 그때까지만 해도 변변한 회화 작품을 발표해보지 못했고, 주로 조각 작품에 매달려 왔었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근성을 지녔던 미켈란젤로였으니 역시 승부는 예측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레오나르도는 캔버스 앞에서 진득하게 앉아있지 못하고 빈둥거리거나 다른 흥밋거리에 곧장 빠져들었고, 시작한 작품을 완수하는 경우도 드물었으니 대회의장 벽화도 결국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반면 미켈란젤로는 일단 작업에 착수하기만 하면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 기대했던 것보다 늘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는 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사실 말년에 완성한 시스티나 천장화 역시 회화작업을 본격적으로 해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 착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를 질투한 주변의 예술가들이 간계를 부려 미켈란젤로의 명성을 한 번에 추락시키고자 교황으로 하여금 이 일을 지시하도록 옆에서 부채질했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 앞에서 미켈란젤로는 처음에는 교황의 의뢰를 거절했었지만, 주변상황은 그로 하여금 이 일에 매달리도록 그를 몰고 갔다.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든, 강제에 의한 결정이었든 결국 그는 시스티나의 천장작업에 착수했고 이는 역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역작이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이 스타로 급부상해 대중들의 인기를 얻었다고는 해도 결국 명망 있는 가문들이나 교회의 주문과 돈을 받아 작품을 해야 했으니, 과연 화가나 조각가들에게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이라는 것이 존재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단연 미켈란젤로라는 인물이 심상에 우뚝 떠오른다. 그는 몰락한 귀족 가문의 출신으로서 아버지와 삼촌은 그가 열심히 공부해 집안을 다시금 유세 있는 가문으로 일으키기를 바랐다. 또한 예술가란 직업을 천하고 수치스럽게 여겨 예술가가 되겠다고 고집부리는 어린 미켈란젤로를 심하게 두들기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예술가로서의 삶 이외의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어린 나이에서부터 뚝심 있는 예술가였던 그는 죽는 날까지 그 우직함을 저버린 적이 없었다. 일과 중 아주 조금만 자고 모든 시간을 일에 몰두했고, 병석에 누워있다가도 자기도 모르게 작업장으로 달려가곤 했다.

말년에 제작한 피에타 상은 주문 없이 스스로의 의지로 완성한 작업이었다. 그로 하여금 강인한 의지를 발휘하도록 이끌었던 정신적 힘은 세속을 초월한 종교적 신념이었으며, 이는 작품 속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비뚤어지고 권력화된 교회의 틀 속에서 그는 예술가에게 덧씌워진 부당함을 정면돌파하고 했다. 항상 뜨겁게 열정을 발휘했고 극한의 노동을 감내했다. 늙지 않는 영혼과 정신력은 피에타 상의 젊은 마리아에게서 고스란히 발현되었다.

반면 레오나르도의 심연은 미스터리함 그 자체이다. 움베르크 에코는 레오나르도가 후대에 자신이 추리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설계했다고까지 주장했다. 레오나르도는 동성애와 이교에 현혹되어 있었고, 매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해 큰 물의를 일으키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필요할 땐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숨기고 과학자나 건축가, 발명가를 자처하기도 했다. 다빈치의 심연은 깊고 음흉해서 사실 그의 속을 내다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그를 회화를 가장 많이 사랑했던 인물로 여긴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육체는 늘 젊고 힘이 넘치지만 레오나르도의 인물들은 부드러운 선과 알쏭달쏭한 요염함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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