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기억의 한가운데
/박주택
나는 온다, 안개의 계단을 내려와 홀로 남은 빵처럼, 팔리지 않는 침울처럼
나는 내 발자국을 따라와 가느다란 빛이 이어주고 있는 기억 사이에 서 있다
나는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것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그러나 어느 곳에 서 있었는지 작은 것조차 어두웠다
나는 온다, 밤이 다할 때까지
기억에서는 또 잡귀가 태어나리라
- 박주택 시집 ‘또 하나의 지구가 필요할 때’/ 문학과 지성사
시인에게는 정말 또 하나의 지구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나의 지구에 현재의 그가 서 있다. 또 하나의 지구는 두 지구 사이를 이어주는 가느다란 빛이 흐르는 외롭고 침울한 무의식 속 기억까지 포함한 기억의 지구이다. 언제나 기억의 한가운데에 서 있기는 하지만 분명치는 않다. 이어질 듯 흐릿하며 침울한 그리움이라서 작은 것조차 어둡다. 그러다 보면 기억들은 가지를 치고 어수선해지면서 끊임없이 잡귀가 태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안개의 계단을 내려온, 내 발자국을 따라온 기억들을 따라 가느다란 빛이 이어주고 있는 기억 사이에서, 밤이 다할 때까지 홀로 남은 그리움을 마주하는 것이다. /김은옥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