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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린 천재에서 둔재까지 : 조선 광기 열전

조선 정조 13년(1789) 8월에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 능인 현륭원(顯隆園)을 수원 화산으로 이장하려 했다. 이에 관상감(觀象監)에서는 천문을 관측했다.
왜? 길일(吉日)을 택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데 이상한 현상이 관측됐다. 해 뜰 무렵이나 해 질 무렵 하늘 정남쪽에 보이는 중남성(中南星)이란 별자리가 1도 정도 자오선 궤도를 이탈해 있었다.
거의 모든 별은 세차운동(歲差運動)이라 해서 지구 축이 흔들리면서 조금씩 바뀌기 마련인데, 이에 의해 중남성 또한 50년 전에 비해 궤도를 벗어나 있었다.
이에 관삼감(觀象監)에서는 김영(金泳)을 불러들였다. 김영은 천문기구 등을 새로 만들어 '하늘을 바로잡으니' 마침내 정조 13년 8월21일에 현륭원은 이장되었다.
김영은 누구인가? 조선이 낳은 '굶어 죽은 천재과학자'이다.
그와 교유한 당대 조선 지식인들이 남긴 기록에서 이미 그 출신지가 엇갈리고 있고, 죽은 해도 틀리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질까?
양반이 아닌 평민 출신이요, 처음에는 수학이 좋아 수학에 미치다시피 했으며, 나중에는 천문학과 주역으로 관심분야를 확장했던 그는 그 뛰어난 실력으로 역관으로 '특채'되고 종6품까지 올랐으나 결국은 주위의 시기와 질시에 쫓겨나 굶어죽었다.
김영이 천재였다면, 김득신(金得臣.1604-1684)은 둔재 중의 둔재였다.
어머니가 태몽에 노자를 보고 낳아, 아버지가 대성할 것으로 기대했다던 김득신. 글은 아홉살에야 겨우 배우기 시작했고, 처음 시를 지은 때가 스무살이었다.
이런 둔재성을 이기는 방법은 끊임없는 노력. 이에 김득신은 가장 '무식한' 방법을 썼다. 무조건 외우자. 이런 작업이 얼마나 처절했는지 '독수기'(讀數記), 즉 책을 읽은 횟수를 스스로가 남기기도 했는데 이를 보면, "'백이전'이란 글은 1억1만3천 번을 읽었고, '노자전'은 2만 번을 독파했다. 또 '장군묘갈명'은 1만3천 번을 읽었다."라고 하고 있다. 더 나아가 김득신은 이렇게 말한다.
"갑술년(1634)부터 경술년(1670) 사이에 「장자」와 「사기」, 「대학」과 「중용」은 많이 읽지 않은 것은 아니나 읽은 횟수가 만 번이 되지 않아 싣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무지막지한 독서를 통해 김득신은 머리가 좋아졌을까? 그래도 매번 까먹곤 했다 한다.
한국고전문학 전공인 정민(44) 한양대 교수가 쓴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는 김영이나 김득신, 허균, 권필,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정약용, 노긍 등 열정과 광기로 얼룩진 삶을 살다가 간 조선시대 '마이너리그'들에 관한 부담없는 이야기요 조선의 광인 열전이다. 푸른역사 刊. 333쪽. 1만1천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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