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가을이다.
갈대숲이 있어 좋다. 활짝 핀 은색 빛으로 바람을 빗질하고 여름내 웃자란 초목을 쓰다듬는 것이 영락없는 가을의 파수꾼이다. 익을 대로 익은 풀씨와 출렁이는 갈 볕 그리고 조용조용 스미는 그리움이 있어 행복하다.
가을이 오면 더러는 여행을 떠나기도 하지만 나는 천변을 서성이는 것을 좋아한다. 잔잔해진 물살과 가끔씩 허공으로 튕겨지는 물고기 그리고 천변에 핀 갈대가 무엇보다 좋다. 여름엔 끝없는 푸르름이 좋고 하늘이 높아지면 멀대같은 큰 키와 은빛 출렁임으로 습지를 평정하는 갈대가 좋다.
헐렁한 바지를 입고 허적허적 걷으며 언뜻 보기에는 막걸리처럼 텁텁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속이 꽉 찬 야무진 사내 같은 풀이 갈대다. 쉬이 꺾이지도 않고 발치에 이런 저런 생물들은 품고 있어서 더 정이 간다.
가을은 상상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차 한 잔 들고 잔잔한 음악에 취해있다 보면 가슴 한쪽이 시려온다. 옷깃을 여며도 마음을 단속해도 속절없이 파고드는 허전함은 어쩔 수 없다. 풀물 빠져 파삭해진 잎들이 씨앗을 멀리 좀 더 멀리 보내는 것처럼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고독하면 고독하도록 방치하면 된다.
이 순간이 아니면 언제 이토록 나에게 충실할 수 있겠는가. 강둑을 서성이다가 발등에 툭 떨어지는 설익은 은행잎을 책갈피에 끼워본다. 사춘기 무렵 한창 했던 일이다. 은행나무를 끌어안고 차라리 화석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알 수 없는 설움에 눈물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곱게 말린 은행잎을 동봉하면서 평생토록 변치 않을 우정을 약속했지만 살다보니 연락조차 끊긴 채 살아가고 있다. 가을이 되면 문득문득 그 친구가 보고 싶다. 노랑은 그리움이라 했던가.
도시락 반찬인 계란말이를 슬그머니 내 밥 위에 얹어주기도 하고 먹어도 먹어도 맛나던 라면땅 한 봉지 책상 서랍에 넣어놓던 친구였다. 한 학년 내내 단짝으로 지내다 친구가 전학을 가게 되면서 만남이 어려워지고 소식 또한 뜸해졌다. 군인가족이라 이사가 잦았고 언제부턴가 연락이 끊겼다.
뒤늦게 수소문해 보았지만 친구의 행방을 알 수 없어 더 안타깝다. 만날 수 없어 더 그리운 친구다. 아련히 떠오르는 친구를 옆에 두고 강둑을 걷는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가을이 물러서면 어쩌나 조바심도 난다.
허공에 수없는 발자국 찍으며 비상을 끝낸 청둥오리 갈대숲으로 숨어든다. 나도 두 팔 벌려 허공을 저어본다. 뒤뚱거리는 모습이 오리 같지만 재미도 있고 기분전환이 된다.
들녘은 점점 비워지고 나무는 잎을 버리며 지난 계절을 뿌리로 기억한다. 나무는 나이테를 만들고 나는 철없는 나이를 꾸역꾸역 먹으며 적체된 추억들을 되새김질 하곤 한다. 점점 흐려지는 기억을 잡으려 빛바랜 앨범을 들춰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 흑백의 시절들이다.
강이 물 주름을 만들며 상류의 기억을 하류로 밀어가며 바다로 흘러들 듯 지금 이 시간도 흐르고 흘러 기억이 되고 추억이 될 것이다. 머잖아 아름다움을 잃게 될 갈대가 새 봄이 오면 어린 순을 내밀며 희망을 말하는 것처럼 우리도 미지의 삶을 향해 이 가을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