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서주영
헐거워진 오늘을 만지작거리다가 문득 바깥을 본다
발밑에는 어제의 주검들이 무수히 떠내려간다
오래도록 네 안에 웅크린 채 망명해 살던 내가
캄캄한 얼굴로 너를 두드린다
어둠 속에서 온갖 몸부림으로 나를 헤집다가
비죽이 고개 드는 너와 홀연히 마주친다
번쩍이는 섬광에 가슴 안 캄캄했던 조도가 높아진다
간절한 눈빛 언어를 받아 적던 서로의 바깥에서
시린 무릎으로 건너온 겹겹의 옹이와 마주친다
- 서주영 시집 ‘나를 디자인하다’
문득 헐거워질 때가 있다. 네가 나를 찾지 않고 나도 너를 찾지 않는 그러한 하루를 만날 때가 있다. 바쁜 날들 속에 주어진 모처럼의 시간. 하지만 그러한 여유도 잠시, 우리는 발밑으로 어제의 주검들이 떠내려가는 허무와 무료함을 느낀다. 그리하여 문득 보게 되는, 미처 보지 못한 바깥을 본다. 오래도록 네 안에 웅크린 채 망명해 살던 내가 캄캄해진 얼굴로 너를 두드린다. 간절한 눈빛 언어를 받아 적던 서로의 그 바깥의 시간, 그 속에는 시린 무릎으로 세상을 건너온 겹겹 옹이가 있다. 그 떨쳐내지 못한 상처가 때로 가슴 안 캄캄했던 조도를 높아지게 하는 것이었으니 비죽이 고개 드는 너와 홀연히 마주치게 되는 날의 그러한 헐거움으로 인해 우리는 나를 헤집던 어둠 속의 나를 보내고 너를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서정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