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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정조의 건축]수원화성 축성과정(上)

 

신도시 수원의 위치를 정할 때 처음부터 지금의 팔달산 아래가 선정된 것은 아니다. 급하게 이전 사업이 진행되다 보니 결정된 사항이 변경하는 일도 일어나게 된다.

처음에는 감독 정민시가 ‘독산성 아래’를 이야기한다. 또 직제학 서유방은 과천과 원소 사이에 있는 미륵당참의 위치를 주장한다. 독산성은 서울에서 볼 때 사도세자의 묘(구읍치)의 남쪽에 있어 거리가 더 멀어지는 문제가 있어 미륵당참의 위치로 선정한다.

하지만 이틀 뒤 팔달산 아래로 변경하게 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가 이유가 있겠으나 원소와의 거리가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팔달산과 사도세자의 묘의 거리는 20리(8㎞)로 접근성이 유리하다. 또 비록 현재의 자리는 아니지만, 팔달산의 반대쪽 고등동(高等洞)은 130년 전 효종의 능을 수원에 쓰고자 했을 때 당시 총감독인 심지원이 주장한 적이 있다. 이처럼 팔달산은 오래전부터 신읍의 배산(背山)으로 선정되어 섰다.

당시 팔달산에 대해 총감독 김익은 ‘옛 이름은 탑동(塔洞)이였으나 태종께서 직접 방문하여 사통팔달의 의미로 팔달동(八達洞)이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산이 감싸고 내부로 물이 돌아 흘려 군사 진지를 설치하기 알맞고 또 삼남(전라, 경상, 충청)으로 통하는 큰길에 있어 구읍치보다 훨씬 났다’라고 하면서 힘을 보탠다.

정조는 강한 추진력으로 묘 이장과 신읍치를 만들지만 짧은 시간에 이루지는 바람에 시행착오를 많이 겪는다. 신읍의 위치도 변경하여 선정하였지만, 신읍의 관청건물도 여러 번 변경 건축된다. 성곽 축성에 대한 것은 신읍 조성 후 3년 후에 결정되면서 민가 철거 등이 일어난다.

똑똑한 정조가 이처럼 많은 시행착오를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고 본다. 이장과 읍치조성 및 축성(築城)과정에서 정조보다 더 많이 아는 전문가는 보이지 않는다. 이 일들은 정조가 미리 공부하고 신료들에게 지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정적(政敵)들이 많아 정치도 힘든데, 풍수와 도시계획 및 성곽에 대해 이만큼 공부하고 지시하느냐 시행착오가 있었다고 본다.

수원성곽의 형성과정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자.

수원 신읍이 처음 조성될 때에는 성곽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사도세자의 묘를 참배할 때 정조가 머물 건물도 없어 2달 만에 행궁(27칸)과 내아(34칸) 관청(5칸)이 만들어진다. 2차 공사는 다음 해인 1790년 5월 7일 진남루와 좌익문 및 중약문 등이 추가되면서 행궁의 모습이 어느 정도 격식을 갖추게 되면서 안정화가 이루어진다.

축성에 대한 논의는 2차 공사 한 달 후인 6월 10일 부사직(副司直) 강유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수원에 성곽이 필요하다고 건의하면서 시작된다. 이후 1791년 초 사직(司直) 신기경, 1792년 당상관 서유린 등 4명이 축성의 필요성에 대한 상소를 계속하였다. 하지만 정조도 신읍치의 조성도 힘들었는데 더 큰 공사인 축성은 백성을 고려하면 무리라고 생각하여 반대를 하였다.

그냥 평범한 지방 도시의 하나로 남을 뻔한 수원이 오늘날처럼 아름다운 성곽을 갖게 된 계기는 신하들의 건의가 아니고 바로 혜경궁 때문에 일어난다.

몇 년 후 어머니 혜경궁의 환갑이 다가오고 있었다. 효자 정조는 평생을 힘들게 살아온 어머니를 위해 가장 화려한 왕대비 환갑잔치를 열고자 하였다. 하지만 정순왕비가 대왕대비로 있는 궁궐에서 정식 왕대비가 아닌 혜경궁의 환갑잔치를 궁궐에서 화려하게 할 수는 없었다.

정조는 어머니의 환갑을 수원에서 열기로 계획하면서 수원은 새로운 전환을 맞이한다. 행궁은 혜경궁의 머물 공간을 새로 만들고 이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재편성을 한다. 도시의 모습은 일반적인 도시가 아니라 신세계를 만들어 어머니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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