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골항아리에서 나온 모래
/파울 첼란
망각의 집은 곰팡이 슨 초록빛.
나부끼는 문마다 너의 머리 없는 악사가 푸르러진다.
그는 너를 위해 이끼와 쓰라린 치모恥毛로 만든 북을 울려 주고
곪은 발가락으로 모래에다 너의 눈썹을 그린다.
그것이 달려 있었던 것보다 더 길게 그린다. 또 네 입술의 붉음도.
너는 여기서 유골 항아리를 채우고 네 심장을 먹는다.
- 파울 첼란시집 ‘죽음의 푸가’ / 민음사
아무리 읽어도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시를 먹는다. 아프다는 것으로는, 인간의 통점으로는 느낄 수 없는 저 너머를 읽는다. 디디 위베르만이 아우슈비츠를 다룬 영화 ‘사울의 아들’을 왜 괴물이라 했는지 끔찍하게 느끼는 새벽이다. 우리는 분단이 되어있고 지구 최후의 휴전 중인 나라이다.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를 지나 전쟁까지 겪으며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학살당하고 이 아픔을 깨트리려 몸부림치고 고문당하고 죽어갔는가. 시인은 아우슈비츠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이다. 그는 누구인가 나이고 또 우리다. 그런 생각을 하면 저 광화문의 촛불이 너무나 아름답게 다시 살아난다. 그러나 왜 시인은 센 강에 몸을 던져야했을까 나도 먹어야한다. 죽어간 수백만의 동족들을 그 심장을, 그런 시를 써야하는데 왜 못 쓰는가 부끄러운 새벽이다.
/조길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