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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사람의 온기가 폴폴 나는 농부의 결혼식 장면

 

지난 15일 새정부 새문화정책준비단이 주최한 ‘예술인 복지정책 종합토론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는 예술정책TF 예술인복지분과의 분과위원장과 분과위원이 발제를 함으로써 새 정부의 문화예술정책 기조를 가늠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는데, 예술인의 권리와 노동시간 인정에 대하여 진지한 고민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었다. 기본적인 방향설정은 바람직하다고 사료된다. 다만 이제 개념 정리를 시작하고 있는 터라 실질적인 정책이 윤곽을 잡히기까지는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기대를 갖고 기다려보리라. 새로운 기대감을 갖고 무언가를 기다리는 일이 어리석음과 부끄럼으로 얼룩지지는 일이 이제는 없기를….

오늘은 피터 브뤼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유난히 가난하고 평범한 이들의 모습을 많이 남겼던, 독특한 존재감의 화가이다. 그는 대공의 피터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의 아들들 역시 화가이면서 피터 브뤼헐이라는 같은 이름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그의 아들들과 구분하기 위하여 ‘대공’을 이름 앞에 붙이는 연유에서다. 대공의 피터는 가난한 이들이 즐비했던 골목의 왁자지껄한 풍경을 즐겨 그렸다. 매우 특이한 화가였던 브뤼헐은 당시 유럽 지역에서 떠돌고 있던 속담을 그대로 화면 속에 재현하기를 좋아했다. 이를테면 ‘장님이 장님을 인도한다’라는 속담대로 눈 먼 자들이 줄서서 걷는 장면을 그리는가 하면, 음식이 넘쳐난다는 의미의 ‘음식이 지붕 위에 넘치다’라는 속담대로 지붕 위에 음식을 그리곤 했다. 비싼 돈을 지불하는 귀족층 주문자들의 요구대로 제작되어야 했던 작품들이 아니었으니 인간세상을 풍자하는 자유로운 표현들을 펼칠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브뤼헐에 대한 사료들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은 실정이라 그가 왜 가난한 이들을 즐겨 그렸는지, 작품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파악할 길이 없다. 다만 귀족들과 교회의 주문으로 종교화와 초상화가 회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시절,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그러한 회화들이 금시기 되었던 플랑드르 지역에서는 일상의 평범한 모습과 풍경을 다루는 회화가 많이 제작되었으므로, 그 지역 출신인 피터 브뤼헐 역시 그랬을 거라 짐작이 가능할 뿐이다. 그러나 여느 플랑드르 화가들 중에서도 브뤼헐의 작품들은 매우 독특했다고 할 수 있는데, 색감과 구도, 주제 면에서 그와 같은 이가 또 없었기 때문이다. 색깔은 매우 진중하게 다루었으나 대상은 코믹하게 다루었다. 길거리에 쪼그리고 앉아 소변을 보고 있는 소녀, 장님을 따라 가는 장님, 교수대 밑에서 춤을 추는 이들 등 그의 작품에서는 온갖 행인들의 기이한 모습들이 펼쳐진다. 사실 그 시절 거리에서는 그러한 풍경들이 넘쳐났었다. 굳이 그러한 장면을 그렸던 화가가 드물었을 뿐…. 그러니 브뤼헐은 거리의 모습을 희화화한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그렸다고 봐야한다. 만약 브뤼헐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그 시절 유럽 거리의 풍경을 상상해 내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브뤼헐의 작품이 지닌 신랄한 분위기에 주목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는 풍자를 다루는 와중에도 항상 애정 어린 시선이 담겨 있다. 난 그의 작품을 볼 때마다 그가 분명히 인간미 넘쳤던 사람이었을 거라고 생각하곤 한다. 특히 그의 말년에는 따뜻한 분위기의 작품을 많이 그렸는데, 그중에서도 1568년 작 <농부의 결혼식>은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사선으로 큼직하게 놓인 여러 테이블 위에는 수많은 이들이 자리잡고 앉아있는데, 다들 먹느라 정신이 없다. 결혼식이라는 호기에 배를 채우고자 모인 사람들의 분주한 마음이 물씬 느껴진다. 가장 안쪽 테이블의 중앙에 앉아있는 신부의 모습은 매우 순박하다. 발그레한 볼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두 손을 모으며 앉아있다. 세상에는 그보다 훨씬 아름답고 우아한 신부를 다룬 많은 작품들이 있겠지만, <농부의 결혼식>에 등장하는 이 신부야 말로 가장 정겹고 순박한 신부이다. 접시에 담겨 옮겨지는 음식들에서는 따뜻한 김이 폴폴 나는 것만 같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서도 온기가 느껴지며, 신부의 발그레한 두 뺨도 그러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언제나 우스꽝스러운 장면들이 연출되기 마련이지만 나눔의 순간이 이마만큼 훈훈할 수 있다면 이 한 세상 얼마나 살아볼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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