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
/복효근
지독한 벌이다
이중으로 된 창문 사이에
벌 한 마리 이틀을 살고 있다
떠나온 곳도 돌아갈 곳도 눈앞에
닿을 듯 눈이 부셔서
문 속에서 문을 찾는
벌
-당신 알아서 해
싸우다가 아내가 나가버렸을 때처럼
무슨 벌이 이리 지독할까
혼자 싸워야 하는 싸움엔 스스로가 적이다
문으로 이루어진 무문관
모든 문은 관을 닮았다
- ‘창작과 비평’ / 2015년 겨울호
어떤 사물의 현상이나 대상을 포착해 시로 치환, 승화시키는 능력은 시인에겐 축복이며 필수다. 복효근 시인에겐 특히나 그 능력이 특출한 것 같다. 벌에게서 단박에 벌(罰)로 전이되는 상상력은 동음이의어임에도 불구하고 무릎을 치게 한다. 그것은 아마도 문(門)이라는 매개체가 있기에 가능했으리라. 기실 문이란 공간과 공간을 획정하는 물질일 뿐 깨부수면 그뿐인데 그 문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은 차안과 피안처럼 엄청나다. 들어온 곳도 나갈 곳도 같은 문인데 벌은 어리석게도 그 속에 갇혀 스스로 형벌을 감수한다. 또한 시인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아내의 말 한마디만으로도 문 안에 스스로를 가두어 지독한 벌을 받아야 했을까. 수행승이 스스로를 무문관 안에 위리안치하고 화두와 씨름을 하듯이, 자신을 무섭게 몰아쳐 의단을 타파해야 홀연한 깨달음에 이르듯이. /이정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