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은 경제에서, 한 사람은 정치에서, 개인의 자유경쟁을 통해 보편적 복지를 달성할 수 있다는 자유주의자의 꿈을 깨뜨렸다. 그리고 독점 체제와 관료제 국가를 이룩했다"(러셀)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트 러셀(1872-1970)은 록펠러와 비스마르크를 현대를 만든 사람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두 사람으로 꼽았다. 이처럼 록펠러는 현대 자본주의와 반자유주의를 동시에 상징하는 거부(巨富)였다.
「록펠러 가(家)의 사람들」(피터 콜리어ㆍ데이빗 호로위츠 지음)은 세계 최고의 재벌가로서 한 세기를 풍미했던 '록펠러 가문'의 흥망성쇠를 다룬 책이다.
포드, 케네디, 루스벨트 등 미국의 대표적인 명문가를 해부한 저서로 유명한 저자들은 4대에 걸친 록펠러 가 사람들의 생애를 9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자세히 소개했다.
'록펠러 왕조'의 창시자 존 D.록펠러 1세(1839-1937)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작은 회사의 사무원으로 취직했다. 매일 일기 대신 회계장부를 기록할 만큼 성실했던 그는 정유업에 과감히 투자해 막대한 재산을 모았다.
그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재산을 불려나갔다. 리베이트와 뇌물 증여 등의 편법으로 석유산업의 동맥인 철도를 장악하고 스탠더드 오일을 설립해 전국의 대형 정유 회사들을 하나씩 인수, 미국 전체 석유 공급량의 95%를 장악하는 독점을 실현한 것.
이 석유 부호는 만년에 들어 "내 재산은 온 인류를 위해 쓰라고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라며 록펠러 의학 연구소와 록펠러 재단을 설립하는 등 자선 사업가로 변신하기도 했다.
록펠러의 외아들 존 D.록펠러 2세(1874-1960)는 가업을 이을 황태자로 기대를 받았지만 평생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 살아야 했다. 그는 주식 투자 실패와 각종 구설수에 오르다 일찌감치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자선사업에 몰두했다.
록펠러 2세는 이후 정재계 및 문화계의 유력인사로 자리잡고 가문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 그가 이룩한 방대한 인적 네트워크는 훗날 록펠러 가문의 훌륭한 자산이 됐다.
록펠러 가문은 3대에 이르러 전성기를 누렸다. 록펠러 2세의 다섯 아들들은 정계, 재계, 학계에 뛰어들어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이들의 승승장구는 재산의 불필요한 낭비와 집안의 분열 등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저자들은 이어 21명에 이르는 록펠러 4세들의 각양각색의 삶을 추적한다.
책은 부호로서의 화려한 생활과 함께 정신과 병원을 들락거려야 했던 불행한 사생활을 들추며 '그들은 과연 행복했던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씨앗을뿌리는사람들 刊. 함규진 옮김. 904쪽. 3만3천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