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층 아파트
/김영산
문방구점을 하는 아들 내외가 있는
할머니가 또 불쑥 찾아왔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더니,
자기 집인 양 아주 조용히 들어왔다
검버섯 낯으로 새색시처럼
안방을 기웃기웃 하였다
이 방에서 손주와 함께 살았다 했다
그리고 19층 아파트 베란다에 서서
하염없이 허공 벽을 바라봤다
몇날이 지나 문방구점에 들렀다
할머니 잘 계시냐 물었다 자꾸만
어디로인지 돌아다니신다 했다
옛집을 못 잊어하신다 했다
- 김영산 시집 ‘벽화’ / 창비·2004년
우리 할머니들은 글을 몰라도 숫자와 형태를 기억하는 데는 선수다. 19층 아파트만 보면 예전에 자신이 살던 집으로 아는 할머니가 ‘또’ 불쑥 내 집에 찾아 들어왔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옛 기억을 더듬는 모양이다. 그러다가 베란다에 서서 하염없이 허공을 본다. 허공 벽이다. 그 높은 곳에 살던 때 날마다 까마득한 허공만 보였을 터였다. 함께 살았다 했던 손주는 어디 갔을까. 할머니는 허공 벽에서 무엇을 보고 있을까.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할까?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김은옥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