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작獨酌
/조창환
겨울 저녁
세상의 구석에 홀로 앉아
오래 바다를 바라보는 일은
독작獨酌과 같다
슬로비디오처럼 파도가 멈춘다
외롭고 쓸쓸하고 허전하지만
거나하게 취한다
무장해제 당한 한 생애가
속에서부터 뜨거워진다
집중인지 방심인지
갈매기 몇, 파도에 몸 맡기고 있다
울컥
바보가 허무에 몸 맡기고 흔들리는
한 컷의 흐린 그림자
- 시집 ‘허공으로의 도약’
이백의 ‘月下獨酌’이 떠오릅니다. 꽃 사이에서 달을 맞아 그림자와 벗하며 술을 마시는 詩仙 이백의 흥취와 동해 바닷가에 터를 잡고 바다를 벗하는 시인의 풍류가 어찌 다르다 할 수 있을까요. 온갖 난삽한 시들이 판을 쳐도 무릇 시의 본령이 서정임을 감안할 때 시인의 거처야말로 시심의 무궁무진한 텃밭이겠지요. 거기에 외롭고 쓸쓸하고 허전한 감성으로 바라보는 일망무제의 바다는 몇 말들이 술동이를 들이켠 듯 시인을 취기로 몰아갑니다. 바다를 들이키고 무장해제 당한 시인은 한 생애를 돌이키며 뜨거워지나 봅니다. 오, 그 때가 더더욱 겨울이라니, 저녁이라니! 그 달아오르는 취기를 어쩌겠습니까. 시를 낳을 수 밖에요. 오로지 영혼의 결기를 채찍질하기 위해 세상과 절연하듯 멀리 아야진 바닷가에서 오늘도 홀로 바다와 마주하여 허무에 흠뻑 젖은 시인의 모습이 선연합니다. /이정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