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김추인
이것은
꽃의 압축파일이다
감 씨를 반으로 따개면
흰 배젖에 감싸여 오뚝 서 있는
고염나무 한 그루
내 아기집 속에 있던 1㎜의 아기
초음파 영상 같은
감 씨 속엔
감나무의 숨겨진 전생이 있다
감나무로 성형되기 전
고염나무였다는 DNA
단감을 먹고 씨를 심어보면 안다
- 김추인 시집 ‘오브제를 사랑한’ 중에서
사람 안에 사람이 있다. 감나무 안에는 감나무가 많다. 감꽃은 어린 나의 별이었다. 갈색 껍질을 벗겨내면 젖빛 속살 속에 씨앗이 보였다. 감 씨는 오돌 뼈처럼 잘 씹히지 않았는데 별 맛은 없었다. 대봉 같은 감들은 고염나무에 접붙여 번식시킨 품종이라는 것은 내 키가 다 자란 후에 알았다. 한 그루 감나무 안에 한 생이 있듯 사람의 씨앗을 품고 낳아 길러낸 후 나의 한 생이 저물겠다. 감 씨 속에 들어있는 감나무의 염색체, 한 톨 씨앗의 비밀이 아기집 안에 있다. 누군가 또 압축파일을 풀고 있다. /김명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