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에서
/박순원
내 칫솔은 초록색이다
참 예쁘다 도마뱀 같다
손에 쥐고 있으면 파닥
파닥 움직이는 것 같다
치약은 또 얼마나 달콤한가
비누는 매끄럽고 향기롭고
면도 크림 샴푸 린스 샤워젤
풍성하게 거품이 인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있으면 내가 중산층 같다
내 칫솔은 초록색이다
참 예쁘고 도마뱀 같다
손에 쥐고 있으면 파다닥
빠져나갈 것 같다
- 박순원 시집 ‘에르고스테롤’ 中에서
‘의미’에 지칠 때가 있다. 저 사람은 저 새의 날개는 늘 푸른 소나무는 나에게 무슨 의미인가. 이 시의 의미는? 내 존재는? 관계 속에서, 존재 속에서, 내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의미에 대하여 묻는다. 그래 봤자 큰 깨달음을 얻는 것도 아닌데 의미에 엄청난 의미를 둔다. 그렇게 정신적 의미에 몰리다가 하루가 다 간다. 한 달이 다 간다. 한 세월이 다 간다. 그러면서 몸의 감각은 무뎌진다. 잠시, 초록색 칫솔이 내 손에 가져다주는 파닥파닥 도마뱀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서민층이나 중산층 뭐 이런 것도 따지지 말고 매끄럽고 따뜻한 내 몸을 만져보자. ‘의미’에서 벗어나 ‘나’를 좀 즐길 시간을 가져도 보자. /김명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