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구두
/강경호
아버지 돌아가시고
누님이 유품 모아 불태워버렸는데
내 구두인줄 알고 놔둔
고흐의 구두 같은 흙 묻은 구두
논두렁 밭두렁
당신의 생처럼 질척거리는 길 걸었을
내 마음보다 한 치수 품이 넓은 구두
닦아도 쉽게 빛이 나지 않는데
아버지의 지문처럼 뒷굽 닳은 구두를 신고
내 길을 가면
마치 아버지의 등을 밟은 것 같아
구두 꺾어 신지 못하고
함부로 돌멩이 차지 못해
조심스럽게 길 건너갈 것 같은 구두
철모르는 아들 안 잊혀
이승에 남아 함께 길을 걷는
낡은 아버지의 구두
- 시집 ‘잘못 든 새가 길을 낸다
이승을 떠난 이의 유품은 늘 아리다. 더구나 그 유품이 부모님의 것임에랴. 시인은 누님이 아버님의 유품을 시인의 것으로 잘못 알고 남겨둔 구두를 통해 돌이킬 수 없는 회한의 마음을 절절히 드러낸다. 누구에게나 부모님 사후에야 그분들의 삶을 짚어보게 되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분들의 질척거리던 삶을 생전에는 일부러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가족이라는 굴레로 맺어진 인연은 오히려 너무 가깝기에 애증으로 얽혀있기 십상이다. 그러기에 그 회한은 더욱 절절하리라. 돌이켜보면 언제나 내 마음보다 품이 넓었던 아버지, 이제야 닳은 뒷굽이 아버지의 지문으로 읽히는 때늦은 참회가 가슴을 치고, 이제야 아버지의 등 밟는 것 같아 노심초사하는 철모르는 아들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모습이리라. 혹시 시인의 누님이 그러리라는 짐작아래 일부러 남겨놓은 게 아닐까? /이정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