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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박분화씨 날다

 

“날씨는 참 좋았제, 구름도 한 점 없는 그런 날 훨훨 날아갔데이. 허리 구부리고 양팔 휘적휘적 저으며 그래 바지런케 살더이. 무슨 힘으로 저래 높은 하늘로 미련도 없이 훨훨 날아갔을꼬. 매정도 하제, 갈 때는 어째 그래 덧없이 가노. 봄날에 나비처럼 우리 형님 박분화씨 그래 날아갔부렜데이.”

남도 구슬픈 배따라기 한 자락 풀어내듯, 하늘 환하게 열리고 구름 비껴선 얼마 전 그날 얘기를 엄마는 수도 없이 하고 또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한 번 더 떠올리고 기억하고 싶으신 거다. 갓 스물에 시집 와 지척에 살림 꾸리고 고락을 함께 해 온 사이. 남편 먼저 보내고도 서로 다독이며 의지 해 온 오십년지기 단짝. 팔순이 넘도록 아침저녁으로 안부 전하던 그 손윗동서룰 먼저 보낸 헛헛한 마움. 무엇으로도 그 빈 곳 채울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기에 묵묵히 그 얘기 듣고 또 들어드린다.

봄꽃 진 자리에 여름 꽃 꽃대 올리듯 삶 속의 죽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인식하면서도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현실 앞에서는 숱한 사람들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지막 죽음을 준비하던 가장이 꺼져가는 한 가닥 희망을 붙잡고서라도 다시 한 번 종합병원 집중치료실을 향해 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누군가는 희망이 없다고 말하지만 끝까지 놓을 수 없는 삶에 대한 애착은 결국 남은 이에 대한, 떠나는 이에 대한 못다 한 사랑, 평소에 더 잘하지 못했다는 그 안타까운 후회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철없이 아등바등 살던 그 때 준비 없이 보내드린 아버지가 그리운 적 너무나 많았었다. “나는 우리 상남이가 해 주는 짜장이 제일 맛있더라”시던 그 소박한 소망마저 더 이상 이루어드릴 수 없다는 현실 앞에서 서서히 각인되던 후회. 맛있는 음식 앞에서, 옷가게에 걸려 있던 두툼한 외투 앞에서 제대로 전하지 못한 그 사랑 때문에 눈물 펑펑 쏟아냈던 후회. 그 후회에도 망각의 샘이 있었을까, 여전히 부족한 채로 현실과 공생하며 가을 억세 풀처럼 희끗희끗 나이 들어가는 내 모습을 보며 얼굴 붉어질 때가 있다. 마지막까지 넘치도록 다 퍼주셨던 큰 어머니의 자식사랑 그 앞에서도 말이다.

“나는 죽을 때도 잠든 듯이 갈 거다. 절대로 자식 힘들게 안 하고 싶데이.”

입버릇처럼 하셨다는 큰 어머니 그 말처럼 행여 자식들 힘들게 할까봐 주무시듯 서둘러 떠나신 건 아닐까. 형제 많은 집 맏며느리로 들어와 평생을 내 이름자 ‘박분화’씨는 묻어둔 채로 한 남자의 아내로, 한 집안의 며느리로, 아이들 엄마로만 살아오며 그 숱한 우여곡절 버텨낼 수 있었던 힘. 그것은 오직 ‘자식’이라는 그 꽃 하나 활짝 피워 올리고 싶다는 강하고도 굳건한 그 소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밤사이 창밖에 눈이 하얗게 내렸다. 눈 덮인 땅 속 어딘가에는 봄 꽃 준비하는 씨앗이 있을 것이다. 열정이 넘쳐나던 뿌리를 딛고 한 때 고왔던 꽃을 건너 비로소 만들어지는 씨앗처럼 사람 진 자리에 남기고 간 사랑 또한 그 씨앗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눈 녹고 때맞춰 오롯이 피어날 그 봄꽃 향기처럼 두고두고 퍼내어도 끝이 없을 사랑, 큰 어머니 박분화씨가 남기고 간 그 소중한 추억들 또한 해마다 봄꽃처럼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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