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치는 저녁
/백인덕
사흘의 폭염 끝,
날쌘 숫돌에 가위를 갈아 뒤뜰
라일락 가지를 친다.
흐려가는 저녁 하늘 아래
왼손 마디보다 굵은 놈만 골라
분기分岐된 지점에서 싹 뚝,
푸르고 무성한 잎은 상관하지 않는다.
이제 여름도 끝났다.
서너 개 자르고
흰 수건으로 서늘한 목덜미를 닦는다.
묻어나는 이 꾀죄죄한 때,
어제의 나는
오전 열 한 시에서 오후 두시까지
텁텁한 고량주 한 잔의 시인이었고
해질 무렵까지는 글쓰기 선생, 곧바로
왕십리 모교 장례식장 구석자리,
엉거주춤 끝없는 악수 속에
누구의 후배고 제자고 평론가이며 술꾼이었다.
그렇게 어제는 세 개의 가면으로 지나갔다.
향기 없이 잎만 무성했다.
처서處暑 지난 저녁,
불같은 갈증을 다독이며
뒤뜰 라일라 성성한 줄기를 자른다.
감겨드는 내 목 대신
저 푸르고 싱싱한 목숨을 거둔다.
-시집 ‘짐작의 우주’
살다 보면, 자신이 왜 이 자리에 이르러있는지 알지 못할 때가 있다. 의도한 대로 주도적인 삶을 산 이가 얼마나 될까. 열심히 살았는데 엉뚱한 데 와 있기도 하고 애오라지 자신만을 위해 살 수 없는 게 보편적 진리이기도 하다. 시인은 라일락을 전지하면서 정작 자신의 전지하지 못한 삶을 반추하게 되는 시적 모티브를 얻는다. 시인으로서 선생으로서 또는 누구의 후배나 제자이자 평론가이며 술꾼인 자신은 정작 진정한 자아를 잃고 있는 게 아닐까 회한에 빠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다양한 역할을 감당하며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하는 존재일진대 특히 시인 등 예술인에게 그러한 삶이 얼마나 큰 굴레며 억압인가! 그래서 시인은 절대고독에 시달리고 있는 게 아닐까. 자신의 목 대신 라일락의 가지나 치면서. /이정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