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묘
/정호
와석리 김삿갓묘에는
삿갓이 없다
살아생전 하늘 쳐다볼 면복없다며
번듯한 집에 배불리 들앉아
구들장이나 따뜻이 짊어질 염치없다며
삿갓으로 떠돌이로 죄값 치르고
이제 영월땅 깊은 산중 풀밭에 누워
맘껏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
하늘 아래 죄 없는 자 그 누구나
우리들 질긴 목숨, 그만큼이나
늘어나는 죄의 이력들
서로 속고 속이며 사는 게 세상일이라지만
삿갓 한번 쓸 줄 모르는 우리는
죽어 삿갓 쓰고 누울 일이다
- 정호 시집 ‘비닐꽃’
욕망이란 어디까지인가. 그 욕망의 끝엔 무엇이 있는가. 한 번쯤 하게 되는 이러한 질문은 우리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게 한다. 그러나 누르고 눌러도 다시 솟아오르는 불길 같은 것이어서 막상 행동으로 옮기기란 쉽지 않다. 강원도 영월에는 김삿갓 문학관과 공원이 있다. 그의 일생을 기리는 일말의 행적들과 아무런 표석도 없는 무덤이 있다. 시인은 아마 그곳을 다녀와 이 시를 썼을 것이다. 새처럼 바람처럼 세상을 빈손으로 떠돌다 간 김삿갓, 부딪히는 하루하루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써낸 시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무릎을 치게 한다. 욕망이란 그런 것이다. 훌훌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때 편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여유 속에서 나만이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것이다. /서정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