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일까?” 그리고 “과연 그 역사를 100% 신뢰할 수 있을까?” 역사는 과거 속에 존재한다. 하지만 과거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의 사실(史實)에 대해서 기술자(記述者)가 투시하는 관점(史觀)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한다. 다른 한편, 지금까지 세계사의 흐름에서 볼 때 역사문제는 민족과 국가들의 세력 강화와 생존문제와도 깊이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어찌 보면 역사란 강한 자의 전유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강한 자는 자신들이 더욱 강해지며 영속 가능해지기 위한 목적으로 타 역사를 없애기도, 왜곡도 하는 것이다.
역사학자 리홍범 박사는 ‘역사’를 ‘자아투쟁’으로 보며 기존의 모든 역사관을 ‘유아적 역사관’으로 규정, 역사발전의 단계에서 종국에는 ‘무아적 역사관’으로 전진할 것과 그것은 결국 홍익주의 정신과 일체됨을 강조한다. 그의 저서 ‘홍익민주주의’에서는 한민족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며, 세계사의 전개과정에서 빼어난 사상가들의 거대한 영향력들도 예시하고 있다.
일례로 5세기 초에 쓰인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을 들 수 있다. 14년 동안 공들인 대작 신국론에서 기독교 사상 최초로 신학과 철학을 결합시킨 그의 신학적 역사철학이 미치는 영향은 당대는 물론 지금까지도 지대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으로 당시에는 중세교회와 왕권과의 투쟁에서 로마 가톨릭의 교권을 옹호하는 근간이 되었고, 세력으로서 기독교세계화의 발판이 되었다.
반면 신국론이 발표되고 약 14세기가 지나서 헤겔은 로마 가톨릭의 신학적 역사철학을 배척하고 독일민족주의적 역사철학을 제시한다. 헤겔 사상의 핵심개념인 ‘절대정신(Der absolute Geist)’의 본질인 자유(Frieheit)를 구현하는 중요요소는 ‘국가’이며 그 국가는 ‘종교’에 기초한다. 그는 이상적 종교로 독일적인 프로테스탄티즘이라고 강조함으로 세계 가톨릭 교권으로부터 독일의 자주적 국권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1860년대 독일이 통일되고 강력한 민족국가로서 국력팽창의 시기에 위기감에 고조된 러시아에서는 다닐레프스키의 역사철학이 등장한다. 그는 헤겔이 옹호한 독일식 프로테스탄티즘을 사탄이라고 비판하고 러시아 정교만이 진정한 종교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유럽과 별리된 러시아와 슬라브 민족의 단결을 주장한 범슬라브주의적 역사철학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또한 다닐레프스키와 동시대의 인물인 칼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사관’이 세계의 세력구도 형성에 끼친 영향은 굳이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세계사의 획을 그어온 이들의 위대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리홍범 박사는 지금까지 전술한 역사철학시대를 일컬어 자아의 미성숙 단계인 독선적 배타적 자아투쟁시대로 간주한다. 그리고 역사를 자아투쟁으로 보는 인격사관을 제시한다. 그에 의하면, 헤겔과 다닐레프스키 그리고 마르크스의 역사관은 제1단계에 불과하며, 제2단계 역사는 자아의 성숙과정 단계인 상호대립 공존시대이고 지금이 이러한 시대에 속한다고 한다.
그는 이제 인류가 자아의 완성시대인 제3단계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될 것임을 강조한다. 그 3단계에서는 인간 스스로가 우주의 본성이 하나임을 깨닫고 폭력과 전쟁 없이 당신과 나, 전 세계 인류가 동고동락할 수 있는 홍익(弘益)의 이상사회를 건설할 것을 주창하고 있다. 제3단계의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해는 먼저 정신적 자각(깨달음)과 제도적 개선이 실행되어야 하나, 이러한 일은 쉽게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민족·국가 간의 상호공존 시대를 상당 기간 갖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예정하였다.
그는 미국에서 다양한 분야의 유력한 인사들과 교류하며, 그의 역작인 ‘아시아이상주의’를 통해서 한국이 중국과 일본을 비롯해 전체 고대아시아의 문명종주국임을 널리 알린 기여는 유래 없는 업적이 되었다.
지난 3월27일 고(故) 리홍범 박사의 1주기 추모식을 맞으며 그가 남기고 떠난 정신적 유산의 정돈과 닦음과 빛냄의 과제를 들여다보며, 그 주인공들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