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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인문학]격차사회 갑질사회 장벽사회 추락사회

 

3년 6개월 전 교통사고와 관련해 피해자측 삼성화재와 구상금 소송이 있었다. 출장강의 수입이 적어서 책임보험만 들고 다니는데, 부산에 강의를 갔다오는 길에 졸음운전으로 앞차를 스치는 사고가 났다. 필자의 보험사는 대인대물보상이 마무리됐다고 전화했는데, 2년 반이 지나 초과금을 내라는 전화가 왔다. 교통사고 정보를 이용한 보이스피싱이 의심돼 “소송을 하라”고 했다.

소장(訴狀)을 보니 3명이 타고 있어서 치료비가 책임보험 한도를 넘었다. 그런데 178만원의 구상금이 적어서인지 보험사가 나에게 구상금 안내나 변제의사를 묻지도 않고 그냥 법률회사로 넘겨버린 것을 알았다. 2년 반 만에 전화를 건 그 사람이 삼성화재 직원이 아니라 법률회사 직원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보험사들이 소액 구상금을 관행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이 소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은 원금에 이자를 붙이고 소송비까지 붙여서 받을 수 있으니 보험사는 이득이다. 하지만 매일 운전하며 살아도 수입이 적은 이들이 입을 시간적 경제적 정신적 피해는 실로 크다. 법원의 소장을 받은 책임보험 가입자들은 “소송하면 소송비를 내야하며 변제가 늦으면 년 15% 이자까지 내야 한다”는 9명의 소송대리인 변호사 명단과 함께 날아오는 무서운 경고 문구를 읽게 된다. 과연 구상금 소송을 당한 이들의 몇%가 재판에 나갈 수 있을까?

소액이라 법률구조공단의 변호사들도 기피하는 건이다. 필자는 보험사들의 관행을 지적하기 위해 소송을 준비해서 99% 본인에게 유리한 판결을 얻었다. 필자가 직접 겪은 사례는 가난한 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다. 합법적이지만 지식정보의 갑질이 쌓이고 쌓이는 갑질사회는 계층이동 사다리를 사라지게 한다.

계층상승가능성에 대한 현대경제연구원의 설문조사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계층상승이 어렵다는 답변이 급격히 늘고 있다. 2013년에는 75%, 2015년 81%, 2017년 83.4%이었으니 지금쯤은 85%일 것이다. 동반된 연구에서 그나마 계층상승 기대치가 93%로 나온 계층은 40대 자영업자들이었다. 서비스업에서 대박을 노리고 창업하는 인구가 줄지 않는 이유이다. 명문대 합격률에 대한 조사에서는 계층간 학생의 능력차는 1.7배이지만 부유층의 합격률은 21배가 높았다. 스펙과 스토리로 치장하는 비용이 많이 든다는 뜻이다.

축소경제와 자동화의 여파로 노동소득은 줄고 상속된 자본소득이 늘고 있다. 건물주의 자녀가 운영하는 카페는 커피맛을 연구할 여유가 생겨도 월세를 내는 카페는 달력을 보며 오늘은 몇 잔을 더 팔아야 월세를 낼 수 있을지 걱정한다. 재벌가의 자녀들은 편하게 창업하지만 소시민들이 창업자금을 얻으려면 성공한 경험을 제시하라는 말을 듣는다. 선례를 위해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면 규제에 걸려서 법정에 들락거려야 한다. 위법에 대한 법률의 적용도 기득권에게 더 유리하고 부동산 보유세도 고가의 땅과 건물의 공시가가 낮게 책정된다. 비싼 건물의 시세 대비 공시가는 10%, 보통 건물은 70%이다.

행복도가 높은 덴마크에는 블루컬러 노동자 출신 국회위원들이 많다고 한다. 그들은 한국정치에 대해 ‘어떻게 블루컬러 국민의 운명을 화이트컬러 정치인이 대변할 수 있는가?’라는 의아한 반응이다. 현장을 모르는 엘리트 정치인은 표를 의식하는 면피용 정치를 하며 정치수준은 하향평준화가 된다. 창업자들을 도와주는 규제 샌드박스는 제대로 작동할까? 이렇게 교육과 경제, 정치에서 성공의 사다리가 실종되는 시대를 ‘장벽사회’라고 부른다. 장벽사회에서는 성공에 대한 시도는 추락을 예비하기에 ‘추락사회’라고 부를 수도 있다.

한국은 내·외부에서 몰려오는 정치경제적 위기들이 증가하고 있으니, 언제 어디서 추락할지 모르는 ‘싱크홀(Sink hole)시대’이다. 욕망을 따라 위로만 향하던 우리는 저 깊은 땅 속의 샘들이 마를지도 모르고 공든 탑을 쌓아왔다. 그러다가 우리 삶의 지반에는 누가 언제 한방에 훅! 가버릴지 모르는 싱크홀들이 생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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