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빙
/하상만
달은 지구를 빙빙 돌고 싶어 한다
지구는 태양을 빙빙 돌고 싶어 한다
태양은 은하의 중심을 빙빙 돌고 싶어 한다
빙빙 돌 만한 것이 누군가에게나 필요하지
나도 당신을 빙빙 돌지
당신에게 바치고 싶은 생이 있어
달은 다른 지구를 낳지 않고
지구는 다른 태양을 낳지 않고
태양은 다른 은하를 낳지 않지
나도 빙빙 다른 당신을 낳지 않아
나는 빙빙 당신을 도네
당신이 구부려놓은 시간과 공간 속을
홈 사이에 잘 끼워 넣은 바퀴처럼
-시집 ‘오늘은 두 번의 내일보다 좋다’
중력을 구심력으로 하여 일정한 궤도를 영구적으로 도는 자연 또는 인공위성은 어쩌면 숙명을 타고난 것 아닐까. 달은 지구를 떠날 수 없고 지구는 태양을 떠날 수 없고 태양은 은하를 떠날 수 없다. 이들 관계에 있어 그 당기는 힘을 밀칠 수 없는 운명에 묶인 천체들이 오늘도 거대한 운행체계로 돌고 또 도는 것이다. 어디 천체뿐이랴. 당신에게 바치고 싶은 생이 있어 당신을 빙빙 도는 나는 당신을 떠날 수 없는 영원한 위성이다. 당신의 인력 안에 내가 있다. 오로지 달은 지구를, 지구는 태양을, 태양은 은하를 섬긴다. 시인은 꼼짝할 수 없이 당신의 시간과 공간의 자장 속에서 당신바라기를 하고 있다. 시인의 마음이 그 당신에게 꽂혀 있어, 달과 지구, 태양과 은하로 확장되는 무한대의 사랑이 천체의 운행처럼 숙명적이고 영원하리라. 이런 사랑, 한 번 해볼 만 하지 않은가! /이정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