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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뜨락]뼈대 있는 집 먹물들

 

 

오징어 총각과 멸치 처녀가 열렬하게 사랑하게 되었다. 둘은 혼인을 하려고 양가를 번갈아 방문했다. 오징어 가문에서는 “멸치가 체구는 작아도 뼈대는 있는 집안이니 그 집 규수를 한번 얻어 보자”며 환영했다. 그런데 멸치 문중에서는 “예로부터 뼈대 없는 집안 사람들은 지조가 없어요”라며 반대했다. 거절당한 오징어 집안은 그래도 자신들은 먹 글씨 쓸 먹통도 있는 선비 집안이라며 애써 멸치 집안을 무시한다.

소설가 한승원의 동화 ‘뼈대 있는 집안, 뼈대 없는 집안’에 나오는 이야기다.

흔히 세상에서 공부깨나 한 사람을 보고 사람들은 먹물 좀 먹었다는 말로 빗대곤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뼈대있는 가문에서 태어나 먹물 좀 먹은 자들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데, ‘사회 지도층’이라 불리며 서민보다 우월적 지위에 놓여 있는 자들이다. 이들은 입만 열면 애국 애족을 말하고 국방의 중요성을 말하면서도 석연찮은 이유로 자신과 자식들의 병역은 면제받은 자들이고 대부분 미국 영주권자들이 많다. 민족의 자존과 역사의 심판을 거론하지만 친일 행위와 역사 왜곡을 정당화하는 자들, 모두 먹물 좀 드신 분들이다.

인간은 오징어보다는 멸치에 가까운 존재라고 한다. 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로 나뉘는 척추동물은 모두 뼈대가 있는 집안이다. 우리가 쉽게 접한 동물들이 대개 뼈대가 있는 동물이다 보니 뼈대가 있는 게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뼈대가 있는 동물은 절대 소수라고 하며 전체 동물의 3%에 불과하다. 그러니 인간도 동물계의 소수자인 것이다. 그런데 소수자인 뼈대 있는 동물인간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멸치 문중과 오징어 가문으로 이야기를 더 해보자. 멸치 아가씨의 부모님은 뼈대 없는 오징어 집안을 지조가 없어서 안 된다고 하지만 일제에 투항하고 독재에 봉사했던 이들은 누구였던가. 대략 뼈대 있는 집안이라고 자부하고 칭송받던 이들 아니었던가. 그러니 뼈대 있는 집안이라고 너무들 자랑하지 마소. 그리고 한국의 뼈대 있는 대부분의 사대부 후손의 사람들은 모두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내가 먹물 통이 있는 오징어 집안이 아니라 뼈대 있는 멸치와 가까운 집안이라며 다행인듯 한다.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 문어나 낙지나 오징어나 인간이나 먹물을 품고사는 건 다를 게 없다. 그러나 그 쓰임새는 확연하게 다르게 쓰인다.

오징어나 낙지 문어는 놀라거나 성이 나면 먹물을 뿜어대는데, 이는 포식자의 시야를 가리는 연막 효과는 물론이고 후각이나 미각 등 전반적인 감각기능을 마비시켜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이지만, 인간 사회에서의 먹물의 쓰임새는 이와는 상이하게 다르다. 달라도 그렇게 많이 다를 수가 없다. 특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현실에서 먹물은 아주 비열하게 쓰여왔다.

중국 서진(西晉) 때의 학자 부현(傅玄)이란 이는 일찌감치 근묵자흑(近墨者黑)을 말했는데, 먹물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당연히 자신도 검게 물들게 되므로 먹물을 경계하라는 충고를 후세에 남긴다. 뼈대있는 집안 먹물들이 망치는 사회, 특히 한국의 상류층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제’와는 거리는 멀다.

어물전을 망신시키는 대표 어물인 꼴뚜기놈 또한 덩치는 작을지라도 먹물 좀 품고 있는 놈이렷다. 어쨌거나 어물전이든 인간 사회든 늘 그놈의 먹물들과 뼈대 있는 집안이 늘 문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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