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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200개의 스푼

 

 

 

 

 

팔당호를 내려다보는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호수를 눈에 담는다. 눈으로 들어온 호수는 잔잔하다. 강 건너까지 닿은 시선이 주황색 지붕의 건물에서 멈춘다. 초점을 맞추고 보니 길고 네모진 창에 하얀 커튼이 펄럭인다. 아스라한 풍경이다.

식당인가? 분홍색 간판이 보인다. ‘200개의 스푼’ 뭘까? 200개의 스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200개의 스푼을 다 쓸 수 있을 만큼 손님이 많다는 것인가.

몽환적인 강 저편. 하얀 에이프런을 두른 메이드가 긴 식탁에 200개의 스푼을 하나씩 놓는 모습을 상상한다. 중앙에는 촛불이 타오르고 소매에 하얀 수건을 걸친 집사가 와인 잔을 조심스레 내려놓는 모습도 그려진다. 드레스 자락을 말아 쥔 내가 식탁 의자에 우아하게 앉는 모습도.

양식당이겠지. 한식이었다면 200개의 숟가락이라 했겠지. 일식이라면 200개의 젓가락이었을 테고. 상상이 맞은편을 향해 헤엄친다.

커피가 맛있다. 함께 주문한 빵도 맛있다. 그럼에도 시선은 강을 건넌다. 그곳은 여기보다 더 멋질 것 같다. 바람에 나부끼는 커튼이 그렇다고 유혹한다. 어서 오라고. 그곳이 점점 끌린다.

피츠 제럴드의 소설을 영화화 한 ‘위대한 개츠비’가 생각난다. 매일 밤 개츠비는 자신의 저택에서 호화 파티를 연다. 대공황으로 금주령이 내려진 미국 동부. 만(灣)의 이쪽에서 바라보는 맞은편 개츠비의 저택은 매일 밤 초록 불빛으로 반짝인다. 그 시선은 궁금증과 욕망이다. 누가 파티를 하는지, 어떤 사람들이 오는지 한번쯤 초대를 받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은 더 큰 환상을 불러온다. 눈으로 보이는 가까운 곳, 그러나 닿을 수 없는 그 곳은 선망의 대상이다. 분명 멋진 곳일 거라는 믿음이 욕망을 부추긴다. 욕망이란 가질 수 없을 때 풍선처럼 부푼다.

사람들은 어떤 대상을 이상화하기를 잘한다. 이상화, 또는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는 이성적 사고가 아닌 믿고 싶은 대로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의 상상을 현실에 그대로 덮어버린다. 말하자면 제 맘대로 해석하는 것이다. 강 건너는 분명 멋진 장소일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처럼. 백화점에서 보았던 원피스가 내 몸을 근사하게 보이도록 만들어 주리라는 착각처럼 말이다.

그러나 손에 쥐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욕망이 되지 못한다. 닉이 개츠비와 데이지, 톰의 관계에 끼어들기 전까지의 장면이 상류층에 대한 선망과 기대라면 그 이후는 야비하고 추한 그들에 대한 실망과 환멸이다.

큰 맘 먹고 구입한 옷도 마찬가지. 며칠 어깨가 으쓱하다가 설렘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간다. 이미 손에 들어온 것은 더 이상 욕망이 아니다. 200개의 스푼도 내가 상상한 모습과 다를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새로운 대상에 대한 기대를 멈추지도, 그에 따른 실망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매일 욕망에 사로잡힌다. 욕망이 배제된 삶이 가능할까. 욕망이 없었다면 문명이 발전할 수 있었을까. 선사시대부터 지속되어온 인류의 발전은 어쩌면 욕망이 이루어낸 결과물이 아닐는지. 긍정적인 욕망은 사회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유명한 스님들은 마음을 비우라고 한다. 욕심을 내려놓으라고 한다. 하지만 내려놓고 싶지 않다. 나는 기껏 가보지 못한 강 건너 카페를, 사지 못한 원피스를 욕망할 뿐이다.

또 나는 욕망한다. 복지의 사각지대가 좁아지기를. 사회의 안전망이 두꺼워지기를. 누구나 동일한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사회, 밤거리를 두려움 없이 다닐 수 있는 그런 사회를 욕망한다. 200캐럿의 다이아몬드도, 200채의 건물도 아닌, 겨우 20개도 안 되는 것을 욕망할 뿐이다.

200개의 상념을 가지고 강 건너를 바라본다. 살아가는 동안 나는 욕망하고 실망하기를 반복할 것이다. 200개의 스푼이 줄을 서서 호수를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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