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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칼럼]마지막 편지

 

 

 

내 가슴에는 강렬한 시가 있다. 이름난 시인의 시도 아니고 레토릭이 멋진 것도 아니다. 그 시는 아주 평범한 한 사람이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을 담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다.

지인과 그의 어머님을 모신 추모공원에 다녀왔다. 작은 유리문 너머 하얀 단지에 적힌 글이 내 눈에 크게 들어왔다.

‘그곳에서는 발을 편히 피고 쉬시라.’

하얀 단지에는 어머니를 향한 자식의 애틋한 마음이 고스란히 시가 되어 박혀있었다. 그 시를 읽으면서 얼굴을 직접 뵌 적이 없지만 ‘참 좋은 어머니였구나!’에 생각이 미쳤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분처럼 느껴졌고 한 쪽 마음이 아려왔다. 이 글을 쓴 사람은 누구인지 지인에게 물어보니 뜻밖에도 본인 글이라 했다. 이 사람은 평소에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마치 로봇같은 사람이다. 이 사람이 시를 쓸 수 있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아주 평범한 사람이 이렇게 멋진 시를 쓰다니 놀라웠다. 플라톤이 말했던가? 사랑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사랑하는 어머니를 보내며 써내려간 극히 개인적인 추모의 글은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마지막 편지’가 됐다.

나는 팝가수 중 아델을 좋아한다. 자신의 사랑 경험을 노래로 만드는 아델은 그래서인지 모든 곡들이 이별 후 증오, 분노, 후회, 그리움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그래서 아델의 노래는 가사를 모르더라도 금방 그 감정에 빠져들 만큼 애절함이 있다. 그의 파워풀하고 호소력 있는 목소리도 매력적이지만 헤어진 연인의 결혼소식을 듣고 “내가 여전히 너를 잊지 못했으며 그래서 네 결혼식에 찾아가서 네가 날 보고 그걸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찌질함까지도 매력적이다. 그것이 아델이다. 아델만큼이나 강렬하고 당당한 화가로 프리다 칼로가 있다.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이며 여성주의 운동을 하는 사람으로 이름나 있다. 그도 그의 아픔을 그렸다. ‘떠 있는 침대’는 좀 충격적이다. 자신의 유산의 아픔을 그렸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솔직할 수 있을까? 감추고 싶은 가장 개인적인 사건을 오히려 ‘자! 봐라’ 펼쳐 놓아서 보는 이로 하여금 더 미안하게 만든다. 자기가 겪은 슬픔에 대한 당당함은 독특한 프리다 화풍을 만들며 예술의 비주류라 취급받던 멕시코를 세계 예술계에 올려놓았다. 누가 뭐래도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의 프리다 칼로풍의 예술을 이끈다. 사실 아델과 프리다 칼로만 찌질하고 감추고 싶은 비밀이 그리고 아픔이 있겠는가?

지난 2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이 화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

이 말은 봉감독이 평론가 데이비드 톰슨이 쓴 스코세이지에 관한 책에서 인용한 것으로 이번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 소감으로 유명해졌다. 그의 영화들 역시 대부분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한다. ‘플란다스의 개’는 자신이 살았던 아파트의 경비원 할아버지를 떠올렸고 기생충은 대학 때 여자친구가 소개해준 부잣집에서 과외를 하던 기억이 바탕이 됐다고 한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집에 와서는 자신을 괴롭히는 선생님을 어떻게 복수하면 좋을까 상상하던 소심한 봉소년이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봉감독이 되어 이른바 봉스타일 장르를 창조했다.

창의성은 새롭고 독창적이고 유용한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으로 정의한다. 그런데 창의적인 사람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창의적인 사람인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그저 타인의 생각에 업혀 살아왔기 때문에 발휘되지 않는다. 내 삶이 조금 뒤죽박죽이고 조금 혼란스럽고 조금 두렵고 조금 창피하면 어떤가? 내 안에 비밀 하나 아픔 하나 있으면 어떤가? 그냥 자신의 삶에서 시작하자. 내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이 필요하다. 나만의 이야기가 가장 세계적이고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화가 요셉보이스가 말했다. 아이들을 위해 감자를 깎으면서 내가 지금 하는 게 조각이 아니고 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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