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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의 사탕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 기세가 꺾일 줄 모르며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졸이게 하는 요즘이다. 필자는 유치원을 갓 졸업한 아이를 집에 데리고 있으면서 숨죽여 뉴스를 보곤 한다. 연일 새로 발표된 확진자 수와 이동 경로를 발표하는 관계자들과 언론인들, 바이러스 검사와 확진자 치료에 분주하게 움직이는 의료진들을 바라볼 때마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그 와중에도 감동적인 소식을 접하였는데, 극심한 의료 인력 부족을 겪고 있는 대구로 많은 의료진들이 자원봉사하러 갔다는 것이었다. 또한 대구의 한 게스트하우스 운영자는 이들 자원봉사 의료진들을 위해 숙박 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했다고 한다. 급박하고 정신없는 소식들이 넘쳐나는 요즘 이들이 시민사회에 베풀어준 따뜻한 마음씨에 감동 되어 필자는 마음이 뭉클해졌다. 문득 누군가에게 베푼 호의가 바이러스 못지않은 전파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미술작가들 중에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전파력을 가지고 관객들과 소통하는 이들이 있다. 쿠바에서 성장하고 미국에서 활동했던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라는 작가는 79.3㎏ 만큼의 사탕을 전시 공간에 쌓아놓고 관객들에게 사탕을 가져가도록 했다. 전시를 마치고 나면 작가는 내일을 위해 사탕 79.3㎏ 어치를 다시 쌓아두었다. 작가가 타계한 이후로 미술관은 그를 대신해 사탕을 쌓아두곤 한다. 작가가 타계한지 십여 년이 지났지만 그의 작업은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전시가 되고 있으며, 관객들은 사탕을 가져가며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플라토 미술관에서 그의 전시가 있었다.

미술관의 관객들은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라는 작가의 삶에 많은 공감을 느끼고 있다. 보수적인 미국 사회에서 이민자이자 성적 소수자로 험난한 생을 보낸 작가의 삶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회적 장벽을 넘어 세계적인 현대미술작가로 명성을 얻었지만 결국 그는 예술가로 8년을 활동하다가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79.3㎏은 그가 에이즈에 걸리기 전 건강했을 때의 몸무게이다. 딱딱하고 달콤한 사탕을 입에 물때마다 관객들은 작가의 신체를 떠올렸을 것이며, 그의 몸에 새겨졌던 이민자·성적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상상해보았을 것이다.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는 죽기 전, 연인 로스의 몸무게만큼 사탕을 쌓아놓은 작업도 선보였었다. 그의 연인 역시 에이즈로 숨졌으며, 죽기 직전 몸무게는 34㎏이었다.

그의 작업 중에서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또 다른 작업이 있다. 다른 시각을 가리키고 있는 두 개의 동그란 벽시계 설치작품이다. 작가는 이 두 개의 시계에 동시에 건전지를 넣었다. 처음에는 똑같은 속도로 바늘들이 움직였지만, 결국 둘 중 하나의 건전지는 먼저 수명이 약해지고 두 시계의 바늘이 움직이는 속도는 점점 벌어진다. 작품은 죽음이 연인 사이를 갈라지게 하는 생의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죽음이 아닌 삶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서로를 향하고 있는 두 사람이라도 결국 미묘하게 자기만의 시간을 살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말이다.

가뜩이나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심란한 세상에 에이즈 이야기를 꺼내어 들었다고 성내지 마시기를! 이 가련한 예술가의 삶이 오늘날 관객들에게 남긴 메시지는 결코 에이즈에 대한 공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민자이자 성적 소수자인 이 사람이 연인에게 지니고 있었던 애틋한 사랑이 인류 보편적인 감정이었다는 것을 작품은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작품은 세계의 현대미술 관객들이 사회적 소수자에 대하여 느끼고 있는 안타까움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애틋한 인류애의 감정이 에이즈라는 질병을 뛰어넘어 현대미술 관객들 사이에서 강력하게 전파되고 있음을 세계 곳곳의 그의 작품 전시장에서 여전히 증명되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감염력이 예상을 뛰어넘어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종식을 위해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으니 언젠가 사태가 수습될 것이다. 바이러스가 종식되어도 그것으로 인한 상처는 여전히 남겠지만 서로에 대한 배려와 사랑도 그와 함께 남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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