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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처럼 쉬운 게 또 있을까. 자본이 주인인 세상에서 생각은 값을 쳐주지 않아도 되는 몇 안 되는 것 가운데 하나다. 무엇을 생각하던 혹은 생각하지 않던 온전히 공짜다. 공짜일 수 있는 자유가 생각에 있어서인지, 세상에 쏟아지는 것들을 보면 공기처럼 가볍다. 대표적인 게 말과 글인데 말과 글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소리로 그치지 일쑤다.


소리는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인간을 포함한 세상 모든 것들이 쏟아내는 것이 소리다. 비와 바람이 그렇고 짐승과 자동차 심지어 파리와 귀뚜라미도 소리를 뱉는다. 물론 그렇게 뱉어내는 소리 가운데는 인간의 입을 통해 쏟아지는 것들도 있다. 그렇게 쏟아내는 인간의 소리를 우리는 말이라고 부른다.


그렇다. 말은 소리의 일종이다. 그럼에도 말을 소리와 구분하는 까닭은 뜻을 지녔기 때문이다. 말과 글을 처음 만들어낸 인간들도 의사소통을 위해 생각이 필요했다. 무엇이라고 부를까. 부르기 위한 것들은 자연현상에도 많았고, 사물이나 느낌에도 적지 않았다. 생각 끝에 인간들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부터 한 글자씩 차례로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몸, 물, 불, 숲, 산, 길, 집, 밥, 땅, 일, 힘, 땀, 꽃, 별, 달, 해, 손, 발, 눈, 코, 입, 귀, 숨과 같은 것들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더 이상 한 글자로 이름 붙이기 힘들어지자 다음엔 두 글자로 이름 붙였고, 그 다음엔 세 글자로 붙였다. 그런 점에서 한 글자로 부르는 것만큼 인간에게 소중한 것은 없다. ‘말’과 ‘글’이 소중한 까닭도 그래서다.


한 글자로 된 말과 글 가운데서 굳이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숨’을 꼽는다. 숨은 인간의 삶과 직결되어 있다. 숨을 쉼으로 삶이 시작되고 숨을 멈춤으로 삶이 마감된다. 숨은 숲을 닮아서 끝없이 호흡해야 한다. 인간이 말과 글을 통해 소통하는 것도 엄밀한 의미에선 호흡이다. 숨 쉬지 않는 인간이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글을 쓸 수 있겠는가.


사람이 사람인 것은 두 발(人)로 서기 때문이다. 두 발로 서서 말을 하기 때문이다. 말을 할 때 인간은 자연스럽게 호흡한다. 숲이 숨을 쉬며 호흡하는 것처럼 인간은 말과 함께 숨을 쉰다. 말을 통해 세상과 호흡하고 상대와 소통한다. 그런데 말을 하면 할수록 숲처럼 맑아지지 않고 혼탁해지는 건 왜일까. 말이 말과 멱살잡이를 하여 숨 막히게 하고야 마는 걸까. 두 발로 서는 사람보다 돈이 먼저 우뚝 서는 세상이기 때문일까.


흉기로 나는 상처보다 말로 입는 상처가 많다. 흉기로 난 상처는 치료할 수 있지만 말로 입은 상처는 약이 없다. 유일한 약이라면 말이다. 말이 말을 덮고 말이 말을 보듬는다. 잊지 말자. 자신의 숨을 스스로 끊는 유일한 동물이 인간이다. 우리가 무심코 뱉는 말은 숨을 끊는 독일 수도 있고, 숨을 여는 약일 수도 있다.


눈을 뜰 때마다 아침보다 먼저 말이 창궐한다. 창궐한 말은 글이라는 기호로 바뀌어 영원히 기록된다. 신문과 뉴스와 인터넷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쏟아진다. 보기 싫어도 보아야 하고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한다. 요즘에는 일인방송이라는 것까지 끼어들어 융단폭격이다. 말과 글의 무한 복사 시대가 열린 꼴인데, 그 또한 사람 보다 돈이 먼저 우뚝 섰기 때문이리라.


말은 뱉는 것이고 글은 쓰는 것이다. 뱉고 쓸 때, 입과 손이 뱉고 씀의 역할을 대신한다. 대신할 때의 입과 손은 단순한 입과 손이 아니라 입과 손을 부리는 사람 그 자체다. 그런 이유로 뱉는 입과 쓰는 손에는 뱉거나 쓰려는 사람의 깊이가 녹아있다. 입과 손을 함부로 부려선 안 될 까닭이 거기에 있다. 말과 글은 사람과 사람 아닌 것들을 가르는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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