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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독일기] 길

 

골목은 집과 집이 돌아앉은 등뼈 같다. 깜깜한 밤, 돌아앉은 집의 온기는 담 안으로 고이고, 온기로부터 소외된 골목에 가로등 불빛만 서성인다. 서성이는 것들은 서성임으로 고독을 견디는 법이어서 멈추지 못하고 담을 따라 걷는다. 돈벌이에 지친 살림살이가 좁은 담과 담 사이를 따라 길이 되어 흐른다. 돌아앉은 등뼈와 등뼈 사이에서 기도할 의미조차 상실한 길이 고개를 수그린다. 골목길이 꾸부정 걷는다. 반듯하게 걸을 수 없어서 골목길이 내뱉는 숨소리는 고달프다. 비틀리고 꾸부정한 골목길을 걸을 때, 걷는 것들의 어깨는 담과 담의 틈에 짓눌려 주눅이 든다.

 

내 아버지는 오래전에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떠날 때, 아버지는 지금의 내 나이보다 한참 젊었다. 나보다 젊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건 암癌때문이었다. 위장에서 시작한 암은 췌장과 소장을 따라 번지다가 길을 잃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흩어진 암세포들은 죽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아서, 멀쩡해야 할 정상세포를 차례로 죽였다. 세 번째로 수술대에 올랐을 때, 의사는 손을 쓰지 못하고 열었던 수술 부위를 그냥 덮었다. 마약성분이 첨가된 진통제를 처방 받았음에도 퇴원한 아버지는 한 달을 버티지 못했다. 숨을 거둬들일 때, 아버지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을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차마 닫을 수 없는 미련의 정체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한 쪽 눈을 감지 못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는 아버지의 눈을 쓸어내렸다. 그것으로 아버지와 나의, 아니 아버지와 세상의 작별이 종료될 거라 믿었다. 잘 가세요, 아버지. 암세포도 없고, 수술도 없고, 진통도 없는 나라로 편히 가세요. 하지만 경직된 아버지의 눈꺼풀은 쉽게 닫히지 않았다. 감지도 뜨지도 못한 아버지의 한 쪽 눈을 보고 있자니 덜컥 설움이 북받쳤다. 먼저 울음을 터뜨린 건 여덟 살짜리 막내 동생이었다. 막내는 맨발을 동동거리며 마당에서 울었다. 아버지, 죽지 마. 아버지, 죽지 마. 막내는 마당에서 울고 나는 방에서 울었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었지만 아버지에겐 ‘해당 없음’이었다. 택시회사 경리과장으로 일하던 아버지는 통행금지를 단속하던 방범대원들이 술동무였다. 택시기사들은 밤 열두 시(통행금지)가 임박해서야 사납금을 맞추고 차고지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사납금 액수를 장부에 기입하고, 미수금을 제한 입금 총액을 금고에 보관한 뒤에야 일을 마감했다. 통행이 금지된 거리에는 아버지와 방범대원들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그들을 잡아끌고 불 꺼진 술집 유리문을 두드렸다. 술이 술을 부르고 불려온 술을 따라 암세포가 숨어들었다. 아버지가 그랬듯 숨어든 암세포 또한 통행금지와 무관했다.

 

길은 시작과 끝의 방향이 개별적이다. 입구와 출구가 지향하는 방향이 서로 달라서 모이지 못하고 흩어진다. 그래서 길이다. 그렇게 생겨난 길이라서 길은 만남 보다 헤어짐에 어울린다. 아마도 그래서일지 모른다. 길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 때부터, 헤어지는 순간을 염두에 두고 길이라 부르기로 약속했을지도. 머릿속으로 길이라는 글자를 떠올리며 소리내보면 길이라는 말에 담긴 뜻이 저절로 그려진다. 길... 길이라는 말은, 말이 담고 있는 거리와 공간이 멀고 낯설어서 안으로 다가오지 못하고 바깥으로 흩어진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다. 그런 것이 길이라고 해서 길 아닌 것만 골라 걸을 순 없으니까.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길 앞에 선다. 서서, 길을 따라 둥둥 떠내려가는 이 세상 사람들의 어깨를 본다. 보면, 불현 듯 저 세상으로 떠나간 아버지가 떠오른다. 뜨지도 감지도 못한 아버지의 한 쪽 눈과 끝내 해독에 실패한 아버지의 유언이 길을 따라 뚜벅뚜벅 걸어온다. 숨이 턱 막히다가도, 작별을 겪어낸 것이 어디 나 하나뿐이랴 싶어 발끝에 힘을 준다. 아, 길 위를 떠가는 저 많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발걸음들. 어느 것 하나 작별을 예고하지 않는 게 있는가. 작별은 되돌릴 수 없는 불가항력이다. 작별하기 전에 후회 없이 사랑하자. 작별은 연습이 없고, 기다려주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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