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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보약]소우주 인간 그리고 중추감작증후군

 

오늘은 야간진료다. 누군가 화사하게 인사한다. “원장님 계속 치료 많이 받고 싶었는데 일이 너무 늦게 끝나고 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계속 못왔어요”. 요즘 어떠냐는 질문에 “잘 지내요 호호호.” 환하게 웃는 모습이 참 이쁘다.

 

문득 그녀가 처음 내원했을 때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힘들게 약속을 몇 번이나 바꿔가며 진료실에서 만나 연변 사투리로 꺼내놓는 증상들이 심상치 않다. 자신의 몸에서 고름 냄새가 나고 직장에서도 사람들이 자기를 싫어하고 욕하고 수군거리고 쳐다보고 또 거리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을 쫓아온다고 하였다.

 

검사가 필요해 대기실에 기다리라고 하는 사이 하필이면 그때 불시에 방문한 타업체의 남자직원이 방문하였다. 그녀는 저 사람이 자신을 쫓아왔다고 말하며 다음에 오겠다고 부리나케 나가버렸다. 나는 소개한 분의 염려를 떠올리며 그녀에게 세심한 관심과 치료가 필요함을 전화로 알렸고 이어 연결되어 딸의 상황을 들은 그녀의 엄마는 자신이 잘 챙기겠노라고 다짐하였다.

 

그 일을 잊어버릴 때 쯤 그녀는 엄마와 함께 내원하였다. 처음 내원시 증상과 함께 소화불량, 과민성대장증후군, 불면, 통증 등 증상이 한보따리다. 화병과 중증도의 우울과 불안을 보인다.화병은 대게 특정한 계기가 되는 삶의 사건이 있다.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을 했고 엄마는 그 후 한국으로 와 정착했다. 중국에서 아빠와 같이 15년 가까이 살았는데 엄마랑 같이 살고 싶어서 작년에 한국에 왔다.

 

같이 어울려 자란 우수한 사촌들과 항상 비교 당하면서 열등감과 인정받지 못한 기억이 가득한 성장기였다.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였고 졸업 후 유학을 몹시 가고 싶었는데 좌절되었다. 그녀는 줄줄이 이어지는 말끝에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버지는 자신을 한 번도 이해해 준 적이 없다고 울컥 눈물을 보였다.

 

문진하는 중 음식에 따라 냄새가 나는 것이 차이가 있었다. 특히 육류 또는 인스턴트 음식들을 먹으면 더 많이 나고 직접 요리한 신선한 나물요리에 밥을 먹을 때는 거의 안난다고 하였다. 알고보니 다이어트한다고 거의 안먹으며 인스턴트 음식, 과자 등으로 식사를 때울 때가 많았다.

 

인생을 살면서 경험하게 되는 분노, 슬픔, 두려움 등의 고통스러운 감정들은 몸의 14경락(한의학에서 인체에서 기가 흐르는 통로)의 에너지체계에 영향을 미친다. 그 영향은 어린시절일수록 크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해소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몸의 경락의 에너지체계를 교란시키고 타 장부(한의학에서의 오장육부기능체계)의 기능에도 영향을 주어 전신적인 증상으로 표현된다. 또한 약식동원, 우리가 먹는 것은 마음과 몸 모두에 영향을 준다.

 

나는 그녀가 내원할 때면 더욱 바빠졌다. 한약ㆍ침 치료는 물론이고 모녀 각각을 상담해서 대조적 성격의 모녀가 너무 오랜만에 같이 살게 되면서 발생한 심한 갈등을 조절하였다. 무엇보다 그녀가 냄새가 많이 난다고 느끼는 음식은 금하고 뇌의 신경전달물질이 부족하지 않도록 영양을 각별히 챙겨 티칭하였다. 모두 필요한 치료였다.

 

중추 감작 증후군(Central Sensitivity Syndrome)은 우리가 보고 듣고 촉감을 느끼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는 등의 감각을 인식하는 뇌가 자극에 대한 역치가 낮아져 과민해지는 증상군이다. 어린시절의 트라우마가 영향을 미칠수 있으며 스트레스 상황과 신체적 컨디션이 저하될 때에 더욱 촉발된다. 중추감작증후군으로도 설명하는 화학물질과민증(Multiple chemical sensitivity)은 독성을 나타내는 양으로 간주되는 농도 미만에서 다양한 환경 오염 물질에 노출된 결과로 나타나는 장애이다. 증상의 진행단계에 따라 위장병, 후각과민, 정신과증후군 뿐만아니라 여러조직에 염증을 유발하며 다양한 전신적 증상을 나타낸다. 한의학 치료, 침치료는 중추감작을 완화시킨다.

 

4달전 우울, 불안, 환취, 환청, 피해망상을 비롯한 증상 한보따리를 풀어놓던 그녀는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금 보름달처럼 환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간다. 증상이라는 그물에 걸리지 않고 우주, 지구의 자연과 함께 인간사회 속에서 살아 숨쉬는 온전한 사람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한의학적 관점, 치료의 원칙을 다시금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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