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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동칼럼] 스미스 평화관, 자유와 평화 일깨운다

 

자유는 비장하다. 저절로 굴러오지 않는다.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에 자리한 스미스(Smith) 평화관을 관람하는 내내 그 소중한 가치를 절실하게 느꼈다. 자유는 물과도 바꿀 수 없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공짜가 아니다. 1950년 7월5일 새벽 3시, 오산 죽미령에 도착,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스미스 부대원 540명이 북한군 전차의 행렬과 마주하며 벌린 6시간 15분간의 혈전(血戰)에서 그 뜻을 읽었다. 자유는 세상의 어떤 보물과도 바꿀 수 없다. “아주 어둡던 그날 밤 우리는 한국인 민간 차량에 실려 나중에야 ‘오산’이라고 알게 된 지역에 배치되었습니다.”, “이동 명령을 받았을 때, 한국이 어디 있는 나라인지 물어보았습니다. 상부에서는 도착하면 알게 될 것이라고만 했습니다.” 윌리엄 코의 증언이다. 이름도 위치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나라, 당신이라면 그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울 수 있습니까?

 

우리가 오산 죽미령을 기억해야 할 이유다. 자유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일깨워준다. 전사통지서, 포로 3년의 기록, 1950년 7월8일자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보낸 병력 요청편지, 집보다 좋은 곳은 없다며 포화 속에서 살아 돌아와 가족과 상봉하는 장면, 포로로 잡혔다가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깜깜한 어둠에서 햇빛으로 나온 기분이었다는 증언 등을 통해서다.

 

“미합중국은 싸워보지도 않고 우방과 동맹국의 파멸을 방임하지는 결코 않는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데에는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평화를 누리기 위하여 계속 이루어야 할 대가는 힘과 경계 그리고 헌신이라는 것을 항상 가슴깊이 새겨두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는 바입니다.” 1981년 12월에 작성된 차알스 B. 스미스 미 육군 준장(당시는 중령)의 회고문 발췌부분이다. 기억을 떠올리는 참전자들의 증언이 전쟁의 참화를 알려준다. 전투의 상처가 남아있는 장소에서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 장소로 바뀌었다. 하나의 돌탑에서 시작된 70년 기억의 역사를 유엔군 초전기념비와 기념관, 스미스 평화관을 평화공원에 오롯이 잘 담았다. 1950년6월25일(한국시각 26일)과 6월27일(한국시각 28일), 긴박했던 두 차례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미국의 요청으로 열렸다. 결의를 통해 대한민국이 무력침략을 격퇴하고, 그 지역에서 국제평화와 안전을 회복하는데 필요한 원조를 제공하여 줄 것을 권고하였다.

 

“북괴의 이리 떼 38선을 넘으니 자유 수호 위해 유엔은 일어나다.(중략) 급히 달려온 스미스 특수임무 부대 앞장서 죽미고개에 서고 한국군 제17연대 이에 따르니 한미 연합작전의 서막은 열리다. 혈전 6시간 15분 피바다 이루고 화선은 낙동강으로 이어지네. 한(恨) 품은 고혼(孤魂) 이곳에 잠드니 혈맹의 우의 어찌 잊으랴.” 유엔군 초전기념비의 비문이다. 오산 죽미령 전투에 참전한 스미스 부대 공식인원은 540명 중 전사자는 56명이다. 전쟁이 인간의 마음과 행위에서 시작되었다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것도 바로 인간의 마음과 행위이다. 평화는 천국을 꿈꾸는 말이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의 비평화를 발견하는 것이다. 갈등을 직면하고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는 노력이 평화의 시작이다. 스미스 평화관을 둘러보면서 스미스 부대를 통해 전투 이상의 것을 기억해야 한다. 목숨을 희생한 모든 군인을 기억해야 한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과거에서 배우지 못한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현재 평화와 자유를 누리고 있다.

 

“많은 한국인들이 이곳을 방문해 자유를 위해 싸운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다는 것을 알고 배워갔으면 좋겠습니다.” 오산 죽미령 전투에 참전한 노만 포스네스의 딸, 리사 숄(Lisa sholl)의 소망이다. 그녀는 20여 년간 스미스 부대와 미 제24사단 관련 자료를 모으고 있다. 부대원 명단을 비롯한 관련 신문기사, 문서, 일기, 사진, 영상 등 아버지와 함께 21연대 보병 협회 모임에 나가거나 참전자와 그 가족을 수소문해서 직접 만나 구술채록(口述採錄)을 했다. 스미스 부대에 관한 작은 웹사이트도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스미스 평화관은 그녀가 수집한 자료를 기증받았다.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참전했던 한국전쟁, 제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해준 대한민국에 감사합니다.” 참전용사들의 마음일거라는 생각에 이르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들의 희생으로 대한민국의 시계는 영원히 움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