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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독일기] 옷

 

직업에는 귀함과 천함이 따로 없다고 했다. 거짓말이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불편할 뿐이라는 말도, 열심히 공부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노동을 이윤창출의 수단으로 치부하는 자들이 눈가림용으로 만들어낸 삿된 꿈이다. 그 삿된 꿈에 취해, 저임금과 장시간노동을 참아내게 하려는 마약성분의 처방전일 뿐이다.

 

돈이 주인인 세상에서 가난은 죄악이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가난한 자의 눈에는 답이 보이지 않는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 역시 헛소리다. 용은 개천에서 나오지 않고 강남에서 나온다. 노동자가 평생 벌어도 모을 수 없는 돈을 강남에서는 집 한 채 사고 팔면 뚝딱 벌어들인다. 성공의 조건은 노력(努力)에 있지 않고 재력(財力)에 있다. 당연히 인격보다 돈이 대접받는다.

 

2010년, 거액의 회사 돈을 빼돌린 그룹 총수가 254억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룹 총수는 벌금 낼 돈이 없다고 배를 내밀었고, 판사는 벌금 대신 일당 5억 원짜리 노역을 허락했다. 벌을 받기는커녕, 그룹 총수는 하루에 5억 원씩 벌금을 털어내는 수단으로 교도소를 이용했다. 황제노역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문제의 사건과 판결이었다.

 

돈이 서고 사람이 추락하는 세상에서, 옷은 더 이상 알몸을 가리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우리사회에서 옷은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의미한다. 판검사의 법복과 의사의 진료복과 땅 부자가 빼입은 정장은 사회적 지위가 높다. 대접받지 못하는 지위의 옷은 청소부와 경비와 배달원이 입는다. 논과 밭, 바다와 광산, 도시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작업복도 마찬가지다.

 

어떤 옷을 입고 일하는가에 따라 법이 적용되는 범위도 다르다. 앞에서 언급한 그룹 총수와 가족들의 옷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2010년 당시, 그의 여동생은 법무부교정협의회 중앙회장이었고 남동생은 전·현직 판사들의 골프모임인 ‘법구회’ 총무였다. 매제는 서울동부지청장 출신의 검사였으며 사위는 광주지방법원 판사였다.

 

그러니 가능한 것이다. 그런 옷을 걸친 자들이라야 일당 5억 원짜리 황제노역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무색하게도, 올 한 해 노동자들에게 책정된 최저임금은 시급 8590원이다. 여덟 시간을 기준으로 8만2464원의 일당이 주어진다. 황제노역으로 그룹 총수가 하루에 털어낸 일당 5억 원을 벌려면 도대체 몇 년을 모아야 할까. 모은다고 기를 쓴들 모아지기나 할까.

 

힘들고 각박한 세상이다. 불평등의 격차는 날로 심해지는데 혐오와 차별까지 곳곳에서 창궐한다. 멸시와 천대를 견디지 못한 이웃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하루에 37.5명이 자살하고, 한해 2500명이 고독사(孤獨死)한다. 살려고 기를 써도 죽기는 마찬가지다. 작년 한 해 2020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죽었다. 하루에 6명꼴로, 떨어져 죽거나 깔려 죽거나 병들어 죽었다.

 

코로나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학교와 직장과 상점들이 쉽사리 문을 열지 못한다. 일자리는 줄고 일로부터 격리된 사람들의 속은 까맣게 탄다. 그러거나 말거나 속절없이 쏟아진 장마로 터전을 잃어버린 이웃들도 많다. 이럴 때일수록 지혜를 하나로 모아야 한다. 취약계층의 이웃들은 하루하루가 고통이다. 희망을 주지는 못할망정 절망을 주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

 

인간이 만든 옷 가운데 가장 고결한 것은 성직자들의 옷이라 믿는다. 지금처럼 그 옷에 깃든 사랑과 자비가 간절할 때가 또 있을까. 생활고에 지친 이웃이 수의(囚衣)를 택하지 않도록 자비를 베풀고, 세상살이에 지친 이웃이 수의(壽衣)를 입지 않도록 사랑으로 돌봐야 한다. 지금은 하늘에 대고 하는 기도보다 이웃을 향한 관심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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