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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서] 활자 중독 교사와 만화책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 널리 알려진 안중근 의사의 명언이다. 그는 사형 집행 전 마지막 소원으로 읽다만 책을 마저 읽게 해달라고 할 정도로 엄청난 독서가였다. 나는 안중근 선생님처럼 죽기 직전에 읽던 책을 끝까지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틈나면 책을 읽어서 하루에 한 권 이상을 읽는다. 활자 중독처럼 끊임없이 읽으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낀다.

 

어릴 때부터 이렇게 읽었던 건 아니다. 초등학생 때는 평범하게 학습 만화나 전집류를 읽었다. 그러다 중학교에 가면서 만화책에 빠졌다. 만화책은 너무 강렬하고 중독적이라 걸어다니면서 만화책을 펼쳤다. 한번은 만화를 읽으며 걷다가 노상에서 생선을 파시는 할머니의 바구니를 밟았다. 어찌나 스냅 좋게 밟았던지 바구니가 180도로 뒤집어지며 바닥으로 생선들이 떨어졌다. 할머니는 교복 입은 내가 쩔쩔매며 굽신거리는 걸 보곤 그냥 가라고 하셨다. 그 뒤론 걸어다니며 만화책을 읽지 않았다.

 

인생에서 꼭 알아야 할 지혜의 팔 할이 만화책에 나와 있었다. 친구 사이의 의리는 ‘원피스’ 속 루피와 해적 친구들을 지켜보며 체득했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그 남자 그 여자’를 읽은 다음 날 풀 게이지가 찼다. 연애 감정은 ‘다정다감’을 보며 대리만족할 수 있었다. 집에서는 내가 사 모으는 만화책을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결국 만화책들은 내 10대 어느 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책을 읽지 않던 시절에도 독서가 마음의 부채처럼 남아 있었다. 커 가는 내내 책 읽기가 중요하다고 들어온 덕분인 듯 했다. 성인이 되어서야 글로 쓰여진 책을 한 권씩 읽었다. 대학에 입학하며 독서 동아리에 등록하고, 헌책방과 서점에 들락거렸다. 도서관이 내 집처럼 느껴지면서 독서의 양과 질이 늘어났다. 언젠가부터 만화책을 읽던 것처럼 매순간 무언가를 읽는 나를 발견했다.

 

많은 사람들이 독서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만큼이나 학교에서 독서 교육은 매우 중요하게 다뤄진다. 대부분의 학교 역점 사업이나 특색 사업에 독서 교육이 꼭 들어가 있다. 한 권의 책을 천천히 읽는 ‘온 책 읽기’는 초등 국어 과목의 단원으로 자리 잡았고, 등교하고 1교시 시작 전까지 아침 독서 시간이 불문율인 것처럼 시행된다. 작은 규모의 학교에도 도서관은 반드시 있다.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책을 더 읽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아이디어들도 많다. ‘독서 마라톤’은 읽은 책 쪽수와 간단한 소감을 기록하는 프로그램이다. 책 읽는 행위 자체는 눈에 보이게 남는 것이 없으니 기록물을 남겨서 아이들이 독서에 흥미를 갖도록 독려한다. 학교 도서관에서는 온갖 독서 장려 프로그램을 1년 내내 개최하며 연말이면 독서왕이나 그 비슷한 상을 만들어 시상한다. 나이와 학년에 따라 독서보다 다른 게 더 중요할 순 있어도 독서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교사는 없을 것이다.

 

독서가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으나 생각이 갈리는 부분들은 만화책에서 발생한다. 학부모 상담 때 아이가 만화책만 읽는데 어떻게 독서 교육을 해야 하냐는 질문을 심심치 않게 받는다. 어린이를 위한 고전이나 글밥 있는 줄글 책을 읽으며 사고력과 창의성을 키웠으면 하는 부모의 바람도 모르고 아이는 만화로 된 책을 읽는 경우가 많다.

 

만화책 관련 질문을 받으면 더 많은 만화책을 접할 수 있는 환경 만들기를 권한다. 학교와 교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책을 아예 안 읽는 학생들도 있는데 만화책이라도 읽으면 굉장히 훌륭한 축에 든다고 말한다. 핸드폰을 물리치고 책을 읽는다면 그게 어딘가. 부모의 염려와 다르게 만화책이 미래 독서의 씨앗이 될 수 있다. 다시 생각해도 만화책에 몰입했던 시기가 지금 내 활자 중독의 결정적인 순간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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