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징용 사망자의 유골은 주로 일본 사 찰 여기저기 흩어져 보관돼 왔다. 누구하나 찾는 이 없자 요즘 '쓰레기처럼' 버려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유골 2구의 신원이 확인됐는데 1구는 곡절 끝에 유가족에게 넘겨졌지만 기구한 사연속의 다른 1구는 낯선 이국땅에서 60여년째의 여름을 맞고 있다.
일제말 강제징용돼 평생을 정신병동에 누워지내다 4년전 암으로 세상을 등진 김백식(金百植)씨의 유골은 최근 도쿄 소재 재일 한국인 사찰 국평사(國平寺)에서 발견돼 지난달 27일 친동생에게 넘겨졌다.
2002년 2월15일 숨을 거둔 김씨는 1944년 일본군에 끌려갔다가 전장에서 정신병을 일으켰다. 그후 무려 55년간 가족과 연락이 끊긴 채 정신병동에 갇혀 극심한 고독 속에 죽어갔다. 그의 유골은 국평사에 맡겨졌다. 총련계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과 국평사 주지 등이 나서 한국의 동생을 수소문 끝에 찾아냈고 동생은 지난달 일본에서 유골과 대면했다.
김씨는 형이 평생을 지낸 정신병동과 후생노동성 등을 찾아 경위를 따졌지만 사과는 커녕 딱부러진 해명조차 듣지못했다. 김씨는 "아버님께서는 평생 생사를 알 수 없는 자식을 그리워하며 소식을 기다리다가 단명하셨다"며 "저는 형님이 외롭게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 너무도 상심해 지금도 잠을 이룰 수 없다"고 일본 정부를 원망했다.
유가족에게 되돌려진 김씨의 유골은 뒤늦게나마 한맺힌 넋을 달랠 수 있게될지 모르지만 숱한 유골들은 신원조차 확인되지 못하고 있거나 확인됐더라도 한.일 양국 정부의 무관심 속에 사실상 버려진 채 있다.
거의 60년만에 신원이 확인된 구연석(具然錫)씨의 유골이 그런 경우다. 그는 2차대전 중 홋카이도(北海道)의 일본제철소로 끌려갔다가 해방을 한달 앞둔 1945년 7월15일 미군의 함포사격 와중에 숨졌다. 당시 모두 182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구씨 등 조선인 5명이 포함됐었다.
그의 유골은 홋카이도의 광소사(光昭寺)라는 사찰에 안치됐다. 부친 구성조(具聖祖)씨는 이런 사실을 추후 전해듣고 1963년 10월부터 2차례 당시 일본의 이케다(池田) 총리에게 진정서를 보냈다. 사망원인의 조사와 유골인도, 배상금 요구 등을 담은 내용이었다.
주일 한국대표부(대사관)도 일본 외무성에 조사를 의뢰했다. 외무성은 1964년 8월 배상금 거부와 함께 "유골반환은 조속히 한국대표부와 협의하겠다"고 통지했다. 그러나 일본제철측이 1966년 3월 외무성에 친자관계의 확인을 요구한 뒤로 유골반환 절차는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부친은 세상을 뜨고 '무연고 유골'은 이방 사찰의 골방에서 60년째를 맞고 있다. 한국에는 그의 친지들 일부가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사연은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이 최근 비밀해제된 일본 외무성 외교기록 등에서 일부 확인한 것이다. 진상조사단의 홍상진 사무국장은 "조선인 유골들은 신원도 분류되지 않은 채 마구 섞여 일본 사찰 곳곳에 맡겨졌다"며 "해당 사찰들도 '짐스러운' 유골들을 쓰레기처럼 버리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