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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難讀日記]법(法)

 

할머니가 법정에 섰다. 죄명은 절도였다. 범행 장소는 동네 상점이었고 훔친 물건은 몇 봉지의 빵이었다. 잡혀간 경찰서에서 할머니는 며칠 째 굶고 있는 손자들 때문에 빵을 훔쳤다고 진술했다. 딸은 병들어 누웠는데 집 나간 사위는 연락조차 없다고 덧붙였다. 딱한 사정이었음에도 상점 주인은 처벌을 원했다. 본보기를 위해서라는 게 이유였다.

 

범죄 사실과 함께 범죄 동기 또한 법정에서 다시 진술되었다. 방청석이 술렁였다. 출입기자는 ‘현대판 장발장 사건’이라며 기사를 작성했고 방청객들은 판사의 선처를 기대했다. 하지만 판결문을 읽는 판사의 말투는 단호했다. 법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어서 처벌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이유였다. 판사는 할머니에게 10만원의 벌금형을 내렸다.

 

판결문을 다 읽기도 전에 방청석이 요동쳤다. 돈이 없어 빵을 훔친 할머니에게 10만원의 벌금형은 가혹한 처벌이었다. 벌금을 내지 못한다면 교도소에 들어가 노역을 해야 할 형편이었다. 성토의 목소리가 판사를 향해 쏟아졌다. 손가락질을 하며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를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판사는 망치를 두드려 소란을 잠재우고 나머지 판결문을 읽었다.

 

“배고픈 이웃이 거리를 헤매는데, 나는 기름진 음식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 죄로 10만원의 벌금형을 내 자신에게 내립니다. 아울러 본 법정에 있는 검사와 변호사, 교도관과 방청객 모두에게도 5천원의 벌금형을 내립니다. 생존을 위해 빵을 훔쳐야 할 만큼 어려운 이웃이 있는데,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은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판결문을 모두 읽고 난 뒤, 판사는 지갑에서 10만원을 꺼내 봉투에 담았다. 그리곤 봉투를 방청석으로 넘기며 뜻이 있는 사람은 벌금을 내달라고 부탁했다. 법정에 있던 수십 명의 경범죄 피의자들과 교통법규 위반자들, 검사와 변호사, 경찰과 교도관들도 기꺼이 주머니를 털어 벌금을 내놓았다. 얼굴이 붉어진 상점 주인조차 5천원 벌금 대열에 합류했다.

 

그렇게 걷힌 돈은 57만 5천원이었다. 판사는 벌금 1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47만 5천원을 빵을 훔친 할머니에게 전달했다. 그 순간, 법정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판사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1935년 1월, 미국 뉴욕의 야간법정에서 있었던 일로, 판사의 이름은 피오렐로 라과디아(Fiorello La Guardia. 1882~1947)였다.

 

세상이 흉흉해서일까. 법(法)이 국민들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린다. 검사와 판사의 이름이 거론되고 검찰과 사법부의 개혁을 바라는 사람도 많다. 2020년 오늘, 이 땅에서 한국판 ‘피오렐로 라과디아’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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