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생활에세이] 미스 ‘올가’

 

장마가 한반도에 길게 머물렀다. 관측 이래 최장의 장마라는 말을 들었다. 가뜩이나 코로나로 뒤숭숭한 판국에 수해까지 덮쳐 수재민들의 상처는 더 깊어졌을 터였다. 집중호우에 살림살이가 거덜 난 수재민들을 보자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그날은 러시아 최초의 여성 통치자이며 신성함이라는 뜻을 가진 태풍 ‘올가’가 올라와 내륙 전체를 물바다로 만든 날이었다. 신성함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중부지방을 때린 ‘올가’는 많은 걸 휩쓸어 갔다. 1999년 여름의 일이었다. ‘올가’가 내륙을 향해 올라오던 그 시각 우리 형제들은 평택으로 모이고 있었다. 아버지 생신잔치를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일찌감치 출발해서 내려온 터라 부모님이 계시는 일터에 머물러 있었다. 그날 오산역 인근이 폭우로 물에 잠기면서 서울을 오가는 모든 차편과 기차편이 끊어졌다.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오던 막내 동생은 오산역에서 발이 묶여 근방의 모텔에서 하루 묵어야 했다. 다른 동생들은 늦게 출발한 덕에 오산을 넘어오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갔다.

 

결국 그 날 저녁은 우리 세 사람만 둘러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저녁을 먹었다. 부모님이 폐차장 직원들 밥을 해주었던 터라 그곳에서 숙식을 하셨는데 우리도 그곳에서 모이기로 했던 참이었다. 한참 저녁 밥을 먹고 있는데 아버지가 말했다.

“저 창에 넘실대는 게 뭐냐?”

대수롭지 않게 쳐다봤는데 그건 ‘올가’가 몰고 온 물이었다. 인근 개울에서 흘러넘친 물이 폐차장 마당을 점령한 후 서서히 차올랐던 것이다. 에어컨을 트느라 창문을 꽁꽁 닫아둔 덕에 물이 식당 안으로 흘러들어오지는 않았다. 아버지 어머니도 그런 광경은 평생 처음이라고 말했다. 두 분과 나는 노트북과 통장, 휴대폰 같은 것들과 옷가지 몇 벌을 챙긴 후 식당의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물은 무섭게 밀려들었다. 다행히 2층에 빈 사무실이 있어서 우리는 식당 벽을 의지해 2층으로 올라갔다.

 

뜬 눈으로 밤을 새고 새벽녘 물 빠진 폐차장을 둘러보니 폐허가 따로 없었다. 식당 안은 이미 엉망이었고 쌓여 있던 폐차들과 부품들이 제 멋대로 땅에 박혀 있었으며 물과 함께 휩쓸려온 토사들로 천지가 누렇게 도색되어 있었다. 폐차장은 늪을 메워 만든 터였다. 주변 논들의 피해가 그리 크지 않았던 걸 보면 물은 떠나기 전 머물렀던 늪을 찾아 몰려들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올가’는 늪을 메워 억지로 땅을 만들고 그 땅 위에 버려진 것들을 모은 그 행태를 괘씸하게 생각했을까.

 

부모님은 오래 전 그곳을 떠났다. 폭풍이 지나간 하늘을 보면 종종 그런 생각이 든다. 23년 전에 만났던 그때의 ‘올가’나 온난화가 만들어낸 이 여름의 폭우는 앞 뒤 재보지도 않고 앞으로만 나가는 우리들에게 보내는 경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올가’를 만났던 그 해 여름 몸과 마음은 고생했지만 우린 무사했다. 이 여름에 수해를 입은 분들도 마음 아프고 안타까운 일들이 많겠지만 그런 일들은 잊고 비 갠 후의 맑은 하늘같은 날을 빨리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다시 ‘올가’를 만나면 그땐 아무 것도 잃고 싶지 않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