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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의 험난한 하루, 동행해보니..."추석이 악몽이에요"

추석 대목 앞둔 택배기사... 분류작업에 '한숨'
배달나선 성남시 은행동 급경사에 위험천만
태평동 인근 공사 중인 주택가도 마찬가지
몇몇 택배기사, "흔히 지병 앓고 있어"
험난한 일상에 추석 이후 후폭풍도 '걱정'

“택배기사한테 추석하면 악몽이죠.  63빌딩을 3번 오갈 정도로 걸어요.” 

 

29일 오전 광주의 한 택배 서브 터미널.

 

택배기사를 하면서 10번째 추석을 맞는 베테랑 김진삼(45)씨의 하루를 동행했다. 이른 아침이지만, 택배기사들은 휠소터(자동화 설비)에서 분류 작업이 한창이었다.

 

서브 터미널 소속 배송차량 23대 중 1~2대를 제외한 거의 모든 차량이 들어서 있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이 곳 터미널의 배송 물량은 40%가량 늘었다. 이 곳 터미널을 비롯한 A택배업체 모든 터미널에는 추석을 앞두고 매일 1100만 개 택배 물량이 밀려들고 있는 상황이다.

 

택배기사들은 과거 관행적으로 1시간 가량 분류작업을 해왔지만,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늘어난 물량과 추석 대목이 겹쳐 6~7시간이 넘는 일이 다반사다.

 

김씨는 기자와 인사조차 나눌 틈도 없이 분류작업을 시작했다. 분류작업 말고도 하루 평균 500~600개의 택배를 배송해야 한다.

 

택배차량 앞은 산더미처럼 쌓인 물량으로 가득했다. 정부가 약속한 ‘분류작업 도우미’는 이날도 없었다. 

 

지난 21일 정부와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택배노조)의 협의에 따라 추석 성수기에만 9900여 명의 인력을 각 서브 터미널으로 투입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1주일이 지나도록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때문에 택배노조원들은 지난 23일부터 이를 거부하고 나섰다.

 

곤지암과 옥천 등 허브 터미널에서 간선차량이 오면, 분류작업을 통해 권역별 담당 택배기사의 차량에 싣는다. 원활한 배송을 위해 오후 1시 30분까지 당일 물량 외 모든 분류작업이 종료된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박스를 집어든 김씨는 “원래 오전 6시 30분부터 분류작업을 하는데,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지금(오전 9시)부터 한다”며 “오늘 간선차량 22대 물량을 하차해야 한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택배물량은) 화요일이 제일 많고 토요일에는 줄어드는데, 요즘은 매일 매일이 추석”이라며 “추석 직전부터 연휴 동안 물량이 10월 중순까지 쏟아질텐데, 그 후폭풍이 걱정”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씨는 스마트폰에 메모한 택배일정을 기자에게 건네며 보여줬다. ‘24일 냉동·냉장 마감’, ‘25일 편의점·대형 거래처 마감’, ‘26~29일 추석 전 물량 마감’ 등 빼곡했다.

 

김씨는 상품 픽업과 동료 택배기사의 배송 지원을 위해 오전 10시쯤 성남시 은행동으로 향했다. 

 

은행동은 다세대주택이 밀집한 ‘빌라촌’이 대다수였다. 김씨는 가파른 계단 길목에 차량을 세웠다. 금방이라도 아래로 미끄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김씨는 “빨리 다른 곳으로 가야해 방법이 없다”며 “겨울에는 차를 대기가 가끔 무섭다”고 했다.

 

상품 픽업을 위해 김씨는 몇 번이나 오르막을 오갔다. 급격한 경사를 내려가다 보니, 손수레에 실린 박스가 연신 덜컹댔다. 계속 자세를 고쳐 잡던 김씨의 얼굴에 땀방울이 맺혔다.

 

김씨는 “하루에만 3만5000넘게 걸어, 몸 성한 구석이 없다”며 “2년 전 반월상 연골판 손상 수술을 했다”고 털어놨다.

 

주로 스포츠 선수들한테 발생하는 증상이지만, 김씨와 같이 무릎을 과도하게 구부리는 일이 많은 다른 택배기사들도 흔히 앓고 있는 지병이라고 전했다.

 

은행동 일대 상품 픽업을 마치고, 오전 11시 30분쯤 이마트 성남점으로 발길을 옮겼다.

 

대형마트 앞에는 명절 맞이 과일, 굴비, 곶감 등 추석 선물이 쌓인 5개 대차가 있었다. 선물대행업체에서 주문받은 상품이 대형마트에 모여들면, 택배기사가 픽업하는 형식이다.

 

김씨의 손길은 더 바빠졌다. 마트 직원들이 상품을 차량에 실으며 김씨를 도왔다. 택배차량 문 앞까지 꽉 차고 나서 작업이 마무리됐다.

 

상품 픽업이 끝나 다른 택배기사의 업무 지원으로 더욱 바빠진 김씨와 헤어져, 다른 택배기사 황영섭(36)씨의 오후 배송 일정을 따라갔다.

 

분류작업이 끝난 오후 2시쯤, 성남시 태평동 일대에 도착한 황씨는 비좁은 길목에 차량을 정차했다. 노후화된 도로와 배수관 공사를 하고 있어서 택배차량으로는 더 이상 갈 수 없기 때문이다. 

 

태평2·3·4동 담당자인 황씨는 "태평2동은 아직 공사 중이라 마스크를 써도 아스팔트 끓는 매캐한 냄새가 난다"며 손수레에 택배를 옮겼다.

 

무더위에 마스크까지 착용해야 해 여간 고역이 아니다. 하지만 황씨는 "덥고 힘들지만 고객들을 위해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고 했다.

 

황씨도 과중한 업무탓에 병원을 찾는 경우가 일상이라고 했다. 황씨는 "작년에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야구 선수의 팔처럼 한 쪽 발목 뼈만 자라고 있어 수술했다"고 설명했다.

 

황씨가 종일 뛰어 상품을 배송하는 동안에 인근 주민들은 "감사합니다"라며 황씨를 반겼다.  

 

고객과 다툼에 지칠 때도 있다는 황씨는"(싸움이) 다 부질 없는 일이라 흘려 넘긴다. 반면에 박카스 한 병 주시는 분들은 참 고맙다"고 전했다.

 

황씨는 공사장 한 가운데 비좁은 도로를 비집고 택배 나르기를 수십차례 반복했다. 택배차량의 물량이 많이 줄어들 무렵, 마지막으로 택배기사들 처우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저희 택배기사들은 그저 당일 배송을 위해 엄청 힘들게 뛰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따가운 시선보다는 다치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응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 경기신문 = 김민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