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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人]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11호 침선장 이수자 이남예 선생

늦깎이로 한복에 입문, 꿈이 되고 현실이 되다
배움에 대한 갈증, 궁중복식연구원 통해 풀다
현대에 맞게 재해석한 ‘전통한복’ 특허 등
해미읍성의 아름다움과 전통복식 콜라보, 세계 무대 목표

 

“한복은 일본의 기모노나 중국의 한푸에 비해 바느질법이 까다롭지만 견고하고 활동하기 편합니다. 하지만 요즘의 현실은, 결혼식 폐백 때나 야외촬영 때 조차도 간소화하는 차원에서 한복은 제외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11호 침선장, 故 박광훈 선생의 제14호 이수자(2007년)인 이남예 전통한복 대표·사단법인 서인문화예술촉진회 회장의 말이다.

 

다행히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새로운 스타일로, 또 문화로 조명 받고 있는 모습이어서 반갑기 그지없지만 걱정을 아예 내려놓을 순 없다는 그녀다.

 

“전통은 우리의 유산이며 미래입니다. 한복 버스킹이나 플래시몹 등 SNS를 통한 젊은이들의 움직임을 볼 때 뭉클하곤 합니다. ‘저들은 저들의 방식으로 우리 전통을 이어가는구나’하고 말이죠. 방법은 다르지만 전통을 이어가고자 하는 마음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늦깎이로 한복에 입문, 꿈이 되고 현실이 되다

 

이 회장에게 있어 한복과의 인연은 어쩌면 운명으로 느껴진다. 공직생활을 하다 35세의 나이에 덜컥 한복 업계에 발을 들이고, 그것이 꿈이 되어 지금껏 한 우물을 파고 있으니. 게다가 그때는 한복이 자신의 모든 것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당시엔 한복의 가치나 아름다움에 대해 전혀 인식하지 못했어요. 그저 삶의 한 방편으로 동네 한복 기술자에게서 바느질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결국 제게 꿈이 되고 현실이 되었습니다.”(웃음)

 

시장 한 켠에 조그맣게 한복점을 차린 것이 그 출발이었다. 한 두 명의 고객이 그녀를 찾았고, 조금씩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여느 옷에 비해 한복의 바느질이 고도의 기술을 요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 거기에 꼼꼼한 성격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제대로 된, ‘명품’ 한복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뭔가를 하면 최선을 다하고, 목표를 세우면 꼭 달성해내고야 마는 성격이었다고 하니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하지만 장사가 잘 되고, 손님이 많아도 알 수 없는 갈증은 계속됐다.

 

무엇이 부족한 것일까 고민하던 그때, 이 회장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

 

배움에 대한 갈증, 궁중복식연구원 통해 풀다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때라 검색이 쉽지는 않았지만 성균관대학교 내 궁중복식연구원이란 곳을 알게 됐죠. 적극적으로 알아보니 유송옥 명예교수께서 운영하는 전통복식 교육기관이었어요. 이미 많은 선배들이 그곳을 거쳐 갔고 졸업생 중에는 명장이나 이수자들도 여러분 계셨습니다.”

 

 

배움에 목이 말랐던 것임을 깨달은 그녀는 지체 없이 서울로 달려가 학기를 신청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매장을 운영하거나 추후 창업을 계획하고 있는 이들이었기 때문에 학구열은 매우 높았다고 기억한다.

 

그러나 일과 학업을 병행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시간을 빼는 것도 어려웠지만 일을 하면서 서울까지 공부를 하러 다닌다는 게 만만치 않았다. 몸이 천근만근인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육체적으로는 너무나 힘든 과정이었지만 그녀를 버티게 한 힘은 다름 아닌 지식이었다. 그동안 모르고 있던 사실을 알게 되거나, 혹은 깊이 알게 됨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모든 시간들이 무척이나 행복하고 뿌듯했다.

 

 

“궁중복식연구원의 교수진은 서울시 무형문화재 11호 박광훈 선생을 비롯해 매듭이나 염색 등 전통복식에 필요한 그 분야 최고 전문가들로 포진돼 있었습니다. 그분들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고, 동료들과의 교류로 한복업계의 소식이나 트렌드를 접할 수도 있었죠.”

 

생애 첫 개인전, 그리고 해외 전시와 패션쇼까지

 

궁중복식연구원을 수료한 후 이 회장은 서산문화원에서 생애 첫 개인전을 열게 된다. 궁중복식원에서 배우면서 제작한 작품들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지금 생각하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결정이었단다.

 

 

“부끄러운 수준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서울에 비해 아직은 문화, 예술이 활성화되지 않은 곳이었기에 부족한 전시에도 많은 분들이 찾아주고 격려해 주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실력은 감출래야 감출 수 없는 법. 탁월한 솜씨와 재능은 자연스럽게 그녀를 해외 무대로 이끌었다. 특히 동료들과의 해외 전시와 패션쇼 등을 통해 동포들은 물론 외국인들까지 한복의 아름다움에 푹 빠지도록 만든 주인공이 됐다.

 

“외국 행사는 준비를 꼼꼼히 해야 하고 시차도 있어 힘든 게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외국인들이 한복의 아름다움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감탄할 땐 자부심을 느낍니다. 피로는 눈 녹듯 사라지죠. 저 자신도 한복의 아름다움을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많아요.”

 

 

현대에 맞게 재해석한 ‘전통한복’ 특허 등

 

쇼가 끝난 뒤 쏟아졌던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세계를 무대로 한복의 우수성을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이러한 모든 일을 가능하게 했다고 이 회장은 회상한다.

 

그녀의 활동이 더욱 빛을 발하게 된 시기는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11호 침선장인 故 박광훈 선생의 열네 번째 이수자가 되고 난 이후다.

 

각종 대회에 나가 상을 받은 것은 물론 전통한복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한 작품의 특허, 디자인 등록, 그리고 재능기부 봉사활동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매년 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 심사장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전통에 관련된 종사자라면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을 만한,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이응해 단령을 출품(2015년)해 특선을 받기도 했다.

 

“이 작품은 건국대학교에서 진행한 침선전문가과정 중 충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응해 장군 출토복식을 복원한 작품이라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응해(李應獬, 1547~1627)는 1613년(광해 5년)는 전라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무관이다.

 

단령(團領)은 조선시대 관복으로 깃이 둥글며 소매가 넓고 길이가 길고 안은 화려한 꽃무늬가 펼쳐진 비단이며, 겉은 안이 비치는 얇은 숙초(熟)로 제작돼 있다.

 

사용된 바느질법은 홈질, 감침질, 시침질, 박음질 등으로 다양하고, 특히 정교한 옛 쌈솔 바느질법으로 곱고 가는 홑옷의 배래나 옷감의 곧은 선과 어슨선 연결 시 사용했다.

 

 

해미읍성의 아름다움과 전통복식 콜라보, 세계 무대 목표
 

이남예 회장이 어느 때보다 기쁠 때는 전통에 관심이 있는 학생을 만났을 때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복에 대한 강의를 할 때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자신의 모든 지식을 다 동원해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정도란다.

 

“미래의 꿈나무들에게 전통을 알리는 일이라면 그 보다 소중한 일이 어디 있겠어요. 전통은 꼭 지켜나가야 합니다. 다만 전통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회장이 목표로 삼고 있는 또 한 가지는 해미읍성의 아름다움과 전통복식을 콜라보로 엮어 세계에 내놓는 것이다.

 

 

“해미읍성은 군사읍성이므로 군사복식의 재현도 조금씩 다루고 있습니다. 해미읍성이 제대로 보존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반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해미읍성이 서산의 랜드 마크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에펠탑을 보러 프랑스에 가듯 해미읍성을 보러 대한민국을 방문하는 여행패키지가 생기고, 여행객이 늘어나길 기대한다는 그녀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하루 빨리 진정되길 고대하고 있기도 하다.

 

당초 9월로 예정됐던 국회에서의 패션쇼, ‘한복 共感(공감), 선이 흘러 문화가 되다(가제)’가 무기한 연기된 상태여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세상 사람들이 편안해졌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커서다.

 

 

한편 지난해 작고한 스승 박광훈 선생으로부터 제안 받아 추진해온「喪禮服-수의 만들기」를 출간했다고 이 회장은 밝혔다. 일제에 의해 견직물로 제작되던 수의가 삼베로 변질됐다는 학계의 발표로 제대로 된 전통수의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즈음 시작했던 일이다.

 

“지역 내 어르신을 대상으로 수의 제작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책을 준비하면서 수의 일습을 다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 생전에 책을 출간했다면 추천사도 써주시고 누구보다 가장 기뻐해주셨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선생님 영전에 이 책을 바칩니다.”

 

누구보다 우리 전통을 사랑하고 한복을 아끼는, 그리고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이남예 회장의 무대를 곧 만나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해 본다. 

 

[ 경기신문 = 강소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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