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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온기가 그리운 계절에

 

‘안녕하십니까. 댁 가족은 무사하신지요?’하고 안부를 묻고 싶은 코로나 방역시대이다. 어디선가 사슴의 눈망울로 늙어갈 여자 친구의 안부도 궁금하다. 시인은 시대의 아픔을 메고 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수필 쓰는 작가로서 독자의 안부와 함께 서리 내리는 상강을 맞아 따뜻한 인사와 말 한마디라도 있어야 할 것 같다.

 

어제는 후배 수필가의 수필집을 받았다. 사회적으로 풍부한 능력의 소유자이고 귀한 직장에서 관리자로 업적도 든든히 쌓은 사람이다. 그의 책 제목은 『당신 가족은 안녕하신가요』 이었다. 시집같이 예쁜 책이었다. 바로 엽서 편지를 썼다. ‘가을 낙엽 위 집 한 채 같고, 시집 같은 수필집 잘 받았소. 책이 수필가들의 영혼을 씻어주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써 보냈다.

 

어떤 화가는 행복한 그림은 상처를 다독여 주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고통스러운 그림이 보는 이의 상처를 위로한다고 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살았어. 나도 무척 힘들었어. 한이 서린 그림은 이런 독백을 끌어낸다고 한다. 이번 수필집을 받고 문학의 힘과 예술이란 의도가 이런 것 아닐까 싶었다.

 

정조의 치세 어록을 보면 1797년 12월 말, 광주 목사 서형수에게 보낸 비밀편지 내용과 함께 신하에게 안부를 묻는 대목이 있다. ‘해가 바뀌는 시기가 되자 무엇보다 앞서 초가에서 누더기를 입은 백성이 떠오른다. 연말에도 이 지경이니 연초에는 더 심각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도적 떼가 날뛰는 것도 괴로운데 백성들을 돌보아야 할 아전들이 앞장서 도적 떼와 결탁해서 한 술 더 뜬다니…’ 자기 가족처럼 백성을 사랑하는 정조의 마음이 따사롭고 고맙고 우러러진다. 정조 이후 오늘까지 나는 이런 임금과 대통령을 모시고 살았던가? 전혀 기억에 없다.

 

2010년에는 귀중한 분들이 스러져갔다. 무소유의 법정, 실천적 지식인 리영희, 아프리카 성자 이태식, 바보연기자 배삼룡, 신군부에 저항했던 장태완, 히트곡 작곡가 박춘석, 소설가 이윤기, 개신교의 옥한흠 목사… 이분들은 어려운 시대에 자기의 길을 가면서 사회와 국가에 그리고 후세에 빛을 남기고 떠난 등대 같은 분들이다. 오늘날 가끔 TV 화면에 눈을 주어도 그분들같이 반가운 사람을 볼 수가 없다. 뭔가를 잃고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닌가? 싶어 마음 허전하다.

 

계절적으로 영적으로 추워지고 싸늘한 감각이다. 누군가와 대화할 사람이 그립다. 하지만 코로나와의 이별 공연이 끝나야 한다. 그동안은 마스크를 지갑보다 먼저 챙겨야 하고 당신과 나의 거리는 2m 이상이어야 한다. 기온이 내려가 추워지고 사회적으로 위축당할수록 10년 전에 돌아가신 분들이 따뜻한 모닥불같이 그립다. 가까운 이웃이든 벗이든 따뜻한 손으로 악수하고 포옹할 수 있는 세상이 속히 오길 고대한다. 그동안 나는 호롱불 심지 돋워 공부하는 마음으로 책 읽고 온기 스민 글을 쓸 것이다. 이어서 떨어져 사는 우리 집 어린 생명들과 책을 보내온 저자들, 내 강의를 듣고 인연 맺은 사람들, 그리고 바닷가 모래사장을 거닐면서도 생각나는 분으로서 내 낮은 음성에 귀 기울여 준 형에게 정중히 손편지를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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