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難讀日記 난독일기] 꽃

전태일 50주기에 즈음하여

 

죽어야 피는 꽃이 있다. 수직으로 아찔한 벼랑 끝에 처절하게 부서지는 꽃이 있다. 부서지고 죽어야 피는 그 꽃은 일터에 핀다. 밤낮으로 택배 상자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 굴착기에 무너진 흙더미가 머리 위로 쏟아질 때, 십층 높이에서 일하던 인부가 발을 헛디딜 때, 피처럼 붉은 땀이 죽음꽃으로 피어난다. 추락하는 꽃들에게는 날개가 없다.

 

스스로 몸을 불살라 세상을 밝힌 이들이 있다. 틱꽝득과 전태일이 그렇다. 베트남 승려 틱꽝득은 1963년 소신(燒身)하였고,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은 1970년 분신(焚身)했다. 승려 틱꽝득의 죽음은 부패한 응오딘지엠(Ngô Ðình Diệm) 정권을 몰락시키는 도화선이 되었고, 청년 전태일의 죽음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향한 발화점이 되었다.

 

그것이 역사에 기록된 두 사람의 죽음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리고 계승해야 할 것은 기록된 죽음 너머에 있다. 그들은 스스로 목숨을 불태워 더 많은 이들의 희망을 살리려고 했다. 그러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졌다. 헐벗고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사람들의 옷과 밥과 집을 위해 제 한 몸을 불살랐다. 자신의 목숨을 그들의 희망과 바꿨다.

 

우리가 기리고 계승해야 할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서럽고 고달픈 사람들에게로 향하는 조건 없는 사랑과 연민이다. 스물두 살, 청년 전태일은 이렇게 외치며 삶을 마감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5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 우리는 더 이상 기계가 아닌가. 안타깝게도 전태일의 외침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 사회에서는 사람 목숨 값이 기계 수리비 보다 헐값이다.

 

전태일 50주기라서 그랬을까. 말 잘하는 국회의원들이 TV 대담프로에 출연한 걸 보았다. 진행자는 전태일 3법에 대한 여와 야의 입장을 물었다. 여와 야는 손짓발짓까지 동원하여 전태일의 이름 팔기에 급급했다. 이름 팔기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이르러 절정에 이르렀다. 번질거리는 말들 속에 정작 살아있어야 할 전태일 정신은 죽고 없었다.

 

입으로는 싸웠지만 여와 야는 한편이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적용대상과 범위와 손해배상을 놓고 노동약자의 설움을 외면했다. 나는 말 잘하는 의원들의 말잔치를 들으며 딴생각을 했다. ‘걸레조각처럼 누더기가 되더라도, 법안이 통과되면 좋은 걸까?’ 말 잘하는 여야 국회의원이 전태일의 이름을 들먹거리는 순간에도, 어느 일터에서는 죽음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정부 통계자료에 의하면, 작년 한 해 2,020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죽었다. 올 상반기에도 벌써 1,101명의 노동자가 죽었다. 하루에 여섯 명 꼴로, 깔려서 죽고 떨어져 죽고 병들어 죽었다. 오늘은 또 어떤 일을 하던 노동자가 꽃이 되었을까. 전태일 50주기인 지금, 대한민국은 천지가 죽음꽃이다. 잊지 말자. 추락하는 꽃들에게는 날개가 없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