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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난독일기(難讀日記)] 산(山)

- 신축년(辛丑年) 새해를 맞이하며

 

 

 

섬은 수평선(水平線) 위에 뜨고 산은 지평선(地平線) 위에 선다. 수평선에 뜨지만 바다일 수 없는 섬처럼, 지평선에 서는 산 또한 들녘이 될 순 없다. 섬은 섬이고 산은 산이다. 그래서 둘은 외롭다. 타고난 팔자 따라 섞이지 못하고 도드라질 운명이랄까. 그런 점에서 섬과 산은 닮았다. 섬이 바다에 떠있는 산이라면, 산은 들녘에 서있는 섬이다. 지치고 힘든 것들이 섬으로 산으로 마음을 여는 것도 그래서다.

 

섬 같은 산에 오른다. 갯벌에 찍힌 새 발자국처럼 생긴 산이다. 새 발자국 같은 그것이, 밑으로 함몰하지 않고 위로 도드라지며 간신히 산의 모양새를 갖추었다. 세 갈레로 갈라진 발가락 끝이 동쪽과 서쪽 그리고 남쪽을 가리키는데, 발톱이 박힌 세 지점에 각기 다른 지하철역이 들어섰다. 지하철 역사의 출입구는 산을 눈앞에 둔 기대감으로 종일 요란하다. 먼 길을 돌아 온 사람들이 세 갈레로 갈라진 발가락 끝에 기대고 산에 오른다.

 

와우고개는 갈라진 세 발가락의 한 가운데 있다. 산의 옛 이름이 와우산(臥牛山)인 것과도 관련이 있으리라. 소의 해 첫날을 ‘누운 소’의 등허리를 밟으며 맞이한다. 누운 소는 봉우리랄 것도 딱히 없어서, 능선을 따라 걷다보면 꼬리가 머리 같고 머리가 꼬리 같다. 이리도 변변찮은 산기슭에 흐르다 고일 물이 어디 있다고 곳곳에 약수터가 들어섰을까. 숲길을 따라 걸을수록 섬인지 산인지 정체가 모호하다.

 

소처럼 산의 꼭대기에 웅크린다. 도시에 웅크릴 때는 산이 보이더니 산에 들자 도시가 보인다. 갯벌을 뒤덮은 칠게처럼 도시는 제 영역을 표시하려는 온갖 것들로 질퍽하다. 찬양과 비난의 외침들이 마스크로 모습을 가린 체 거리를 활보한다. 도시는 아직 소비되지 못한 것들을 흔들며 끝없이 소비하라고 사람을 압박한다. 사람이 만든 제도와 시스템에 소비자만 있고 사람은 없다. 소비되고 마는 사람처럼 불쌍한 것들이 또 있을까.

 

누운 소가 벌떡 일어나 도시의 벽이란 벽을 죄다 허무는 상상을 하다 접는다. 그러기엔 누운 소가 짊어진 어깨가 너무 무겁다. 능선을 따라 설치된 군부대 철책이 소의 척추를 짓이기며 죽음을 강요한다. 지뢰처럼 곳곳에 박힌 군사보호시설 경고표시가 DMZ에 든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도시의 평화는 고사하고 누운 소의 목숨조차 위태롭다. 와우고개 출렁다리가 온몸으로 저항하는 것도 그래서일지 모른다.

 

돌아보면 죽음이 두렵지 않던 시절도 있었다. 끌려가는 것도 갇히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 그때마다 ‘죽어도 좋다’고 속으로 되뇌었다. 마음을 고쳐먹은 건 큰아이를 낳으면서였다. 산통은 열세 시간이나 계속되었다. 출산을 마친 아내 얼굴에는 터진 실핏줄이 열꽃처럼 피어있었다. 죽음의 고통과 맞바꾼 새 생명 앞에서 ‘맥없이 죽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산을 내려오면서도 같은 다짐을 했다. 누운 소의 심정으로, 한 해를 또 살아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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