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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보약] 걸어가는 사람

 

 

 

드디어 그녀가 2주간 3일을 빼고는 매일 걸었다는 표시가 된 체크리스트를 나에게 주었다. 시간도 기입하였는데 보행시간이 모두 30분은 넘고 1시간씩 되는 날도 몇 번 있었다. 치료 초기에는 위장기능이 극도로 저하되어 속도 쓰리고 잘 먹지도 못해서, 통증으로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어서, 두통이 심해서. 생리통이 심해서 등등의 이유로 계속 주저되었고 몸의 증상이 조금씩 호전이 되자 조금 활동이 느나 싶더니 곧, 비가 여러날 와서, 날씨가 추워지면서 나가기 싫어서. 김장을 하느라 며칠간 몸살이 나서, 또 나가서 걸으면 귀가 너무 시려서 라는 아주 다양한 이유로 주저되었던 걷기였다.

 

체크리스트를 나에게 건내면서 그녀는 계속 걸으니 소화가 좀 되고 장이 움직여서 그런지 식사량이 좀 늘었어요, 두끼가 먹어져요. 라고 덧붙인다. 몸도 더 가벼워지는 것 같단다. 과연 체크리스트를 비교해보니 30분씩이라도 걷기를 지속한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 되니 식사가 한끼에서 두끼로 늘기 시작했다.

 

좋은 면역을 위한 영양섭취와 소화를 위해 움직임이 필요하고 최소한 하루에 30분정도의 걷기를 권했던 5개월만의 일이다. 그동안 위장통증, 설사를 비롯하여 불안장애도, 화병도, 대상포진도, 진통제를 사탕처럼 복용하면서도 낫지 않던 두통까지 일상의 예기치 않은 사건들과 나쁜 습관들에도 불구하고 좋아지느라 바빴던 시간이었다.

 

치료를 중간결산하고 이제부터는 더 건강해지는 것이 목표로 잡아야 할 시점, 얼마나 지속적으로 유지될지는 그녀 자신에게 달렸다. 습관의 제 2의 천성이고 운명이라고 하는 것은 바꾸기 어렵다는 말로 들린다. 운명이 어디 만만하던가. 그녀도 예외가 아니다. 급기야 나는 요즈음에 한의원에 점점 늘고 있는 난치성 만성통증환자들을 위한 점검표-걷기에 대한 항목이 포함되어 있는-를 기록해오라했다.

 

2주간 자가점검과 실행 후 그녀의 몸은 알게 되었다. 정말 계속 걸으니까 소화가 잘 되고 식사량이 늘어난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얻어진 영양이 그녀에게 활기를 준다는 것을. 아주 단순한 사실이지만 우리는 언제나 한걸음 내딛기가 어렵다.

 

언젠가 우연한 기회에 예술의 전당에서 스위스의 화가이자 조각가인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전시회를 보러간 적이 있었다. 난생 처음 마주한 이국 작가의 작품인 (걸어가는 사람)을 보고는 한참을 우두커니 서 감상하였던 기억이 난다.

 

사람의 전신을 표현한 청동작품으로 모든 장식, 표정, 색, 근육, 살점, 부피감 외형의 어떤 치장하나 없이 철저히 가늘고 긴 골격만 남겨있었는데 그 골격은 걷는 듯한, 걷기 시작할 때 한걸음 내딛었을 때의 형상이었다. 길에서 마주쳤던 이름 모를 많은 타인들의 실루엣을 닮은 것도 같았고 어쩌면 나의 옆모습도 비슷할 수 있겠다는 인상을 받았다. 계속 어떤 끌림에 물끄러미 계속 바라보며 감상하게 되었는데 그 형상이 삶의 여러 조건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걷노라, 걷고 있노라 말하는 것 같아 그 결연함에 알 수 없는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하루 30분이상 걷기가 성인병, 뇌질환, 만성통증, 골다공증 치료와 예방에 꼭 필요하다는 많은 연구가 쏟아져나오는 요즈음이다. 걷기를 진료실에서 처방하고, 확인하면서 그때 한참을 바라보았던 멸치같이 날씬한 청동상, (걸어가는 사람)이 떠오른다.

 

또다른 새해, 또 한걸음 내딛으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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