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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칼럼]불안으로 영혼이 좀비가 된 기득권자들

 

역사는 일상 속에서 반복된다. 2011년 어느 초여름쯤 서울 한남동에서 술을 마시다가 술상을 엎고 자리를 박차고 나온 적이 있다. 10년이 된 얘기지만 40대 후반의 나이였을 때니 아무리 화가 나도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기억하기로는 그 자리에 꽤나 스노비시(snobbish)한 인간들이 모였었는데 건축가 변호사 방송인 패셔니스타 시인 등등이 있었을 것이다. 장소도 한남동 유엔빌리지 근처였다. 비교적 여유가 넘쳐나던 분위기였던 건 불문(不問)이 가지(可知)다. 자연스럽게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오세훈이, 무상급식을 놓고 벌인 정치 도박에 대한 얘기가 화제가 됐다. 그중 여자 시인의 말이 화근이 됐다. 그녀가 말했다.

 

“왜 내가 낸 세금으로 강남 집 애들까지도 공짜로 밥을 먹여야 해? 미친 거 아냐?”

술에 취해 제 정신이 없었던 탓에 말을 더듬었고 그런 나 자신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걸 만회한다며 한 짓이 상을 뒤엎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뛰쳐 나오고 말았다.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이랬어야 옳았다. 제 정신으로 차분하게.

“그럼 한줌도 안되는 강남집 애들 공짜로 밥 먹이는 게 겁이 나서, 대다수 없는 애들, 가뜩이나 못먹는 애들까지 다 굶겨?! 꼭 그래야만 하겠니?!"(김래원 주연의 《해바라기》 버전으로)

 

그러면 외견상이마 비교적 화기애애하게 자리를 파했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여간 그들과는 그날 이후로 만나지 않는 관계가 됐는데 급하게 나오느라 의자에 걸치고 나왔던 웃옷은 그들이 화형식으로 처형한 것으로 훗날 전해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웃지못할 해프닝이었고(아무리 논리와 정의가 앞서더라도 술먹고 사고를 치면 안된다는 것은 고금의 진리이다.) 매우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이슈가 다시 부활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재난지원금을 두고 선별지급이냐 전국민 지급이냐를 두고 논쟁을 벌인다. 물론 10년 전의 무상급식 논쟁과 지금의 재난지원금 논쟁을 등가비교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정서적으로는 비슷하다고 본다. 내가 낸 세금을 가지고 왜 강남에서 카페하는 사람들한테까지 돈을 줘야 하느냐 하는 얘긴데 걔네들 안 주려고 지금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 자영업자들, 그들의 가족까지 굶겨야 하는가. 그러니 다시 똑 같은 마음으로 상을 뒤엎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알기에는 정부 신문인 서울신문은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때는 본인들로서는 정부의 눈치를 안볼 수 없다며 어쩔 수 없이 정부 나팔수 노릇을 한다고 엄살을 부렸다. 요즘 들어서는 연일 반정부 기사를 내기에 바쁘다. 원래 그들이 어느 쪽 라인에 줄을 대 왔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어쨌든 어느 쪽이 됐든 설득력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들의 1월 8일자 기사 ‘국민 반대하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 與 재보선 앞두고 또 포퓰리즘 병’은 국민정서는 물론 사실에 기초한 기사도 아니었다. 그냥 홍남기 병에 걸린 것일 뿐이다. 문재인 국정 지지율을 항상 가장 낮게 조사한다는 오해를 받아 종종 공격을 받고 있는 리얼미터의 1월 6일 조사조차도 애써 무시하고 있는 기사이기 때문이다.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재난 지원금 전 국민 지급에 찬성하는 응답이 전체의 68.1%가 나왔다. 작금의 일부 언론, 보수 언론이 국민을 우습게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얘기다.

 

검찰개혁과 사법개혁, 의료계와 교육계를 싹 뜯어 고쳐야 하지만 거기에 가장 앞서서 해 내야 할 개혁을 넘어선 혁명의 대상은 언론이다. 신문과 방송, 유투브, 팟캐스트 등등 전 언론에 대한 사회적 감시의 신경망을 올바르게 구축해 내지 않으면 사회 개혁은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영화를 많이 본다고 한다. 코로나19 이전에 극장이 뚫려 있었을 때는 천만 관객의 영화가 심심치 않게 나오곤 했다. 5천1백만 인구의 나라에서 영화 하나에 천만 명이 몰린다는 건,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요즘처럼 극장이 ‘봉쇄’돼 있을 때조차, 사람들은 온갖 온라인 도구들을 동원한다. 질시의 대상이 되고 있는 넷플릭스의 국내 가입자가 전년 대비 두배에 해당하는 360만을 넘어섰다는 것은 기록할 만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왜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가. 언론이 제 기능을 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 교육이 자꾸 뭔가를 빠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과 언론을 통해 정의와 진리를 알아가고 배워 나가는데 있어 결핍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산의 부장들》에 사람들이 몰리고 시즌 드라마 《킹덤》이 어마어마한 인기를 모으는 것이다. 아마도 2,3년 안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접대 의혹과 관련해서는 영화가 먼저 진실을 밝혀낼 것이다. 어느 쪽으로든. 옵티머스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근데 이게 원래는 다 언론이 해내야 하는 일들 아닌가? 부끄럽지도 않는가.

 

배두나 주연의 프랑스 영화 《아이 엠 히어》에는 인천공항과 서울이 참 예쁘게 그려진다. 할리우드 리들리 스콧은 그의 걸작 《블레이드 러너》에서 일본의 문화를 대놓고 그린다. 스콧은 이후 《블랙 레인》을 아예 일본 올 로케이션으로 찍기까지 한다. 독일의 거장 빔 벤더스가 1985년에 만든 《도쿄가, Toko-Ga》를 보면 유럽인들이 일본을 얼마나 경외해 왔는지를 알 수가 있다. 독일에 앞서 프랑스는 그중 단연 선두였다. 그런데 이들이 이제 한국에 관심을 갖고, 한국의 술과 음식, 노래와 영화,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을 갖게 됐음을 영화 《아이 엠 히어》는 보여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 강남 애들 안 먹이려고 모든 애들 굶기자는 식의 해괴한 논리를 갖고 사는, 비뚤어진 기득권 사람들은 한국의 국격이 올라가는 것, 우리의 문화가 세계적으로 향유되는 것, 그럼으로써 우리사회가 조금씩 정상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에 대해 어마어마한 불안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는 법이다. 독일 감독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말이다. 영혼이 망가진 자들을 흔히 좀비라고 부른다. 지금 세상엔 좀비가 너무 많다. 좀비는 고칠 수가 없다. 치료할 수가 없다. 그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그 답 역시 영화에 나와 있다. 인기있는 미드 《워킹 데드》의 주인공들 마냥 좀비와 싸우기 위해서는 뭐든 손에 들고 무장할 일이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워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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