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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서] 맛있는 글쓰기

 


아이들은 글쓰기를 어려워 한다. 여러 학년을 가르쳐 봐도 글쓰기 만큼 격한 거부 반응을 불러 일으키는 수업이 없다. 교실 분위기가 활기로 가득 차 있으면 '글을 써 보세요' 한마디로 넘실 거리던 에너지를 다운 시킬 수 있다. 예고 없이 당장 수학 평가를 하겠다고 말해도 이보다 더 반응이 안 좋을 수는 없다.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겠다고 할 때 아이들이 이목구비가 심하게 구겨지던 걸 떠올리면 가히 공포의 글쓰기다.

간혹 글로 막힘없이 술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친구들도 있지만 그런 아이들은 가뭄에 콩나듯 드물다. 어른들에게도 일정 분량 이상의 글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백지 앞에서 막막한 건 어른이나 어린이나 매한가지다. 투정 부리는 아이들의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나도 가끔은 글이 너무 안 써져서 마감을 못할까봐 공포에 떨 때가 있다.

마음을 이해하는 것과 교육 해야 하는 상황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분투한다. 글쓰기를 시키면서 펜과 종이를 건넨 다음 막연하게 '자, 이제 써보세요'라고 말하진 않는다. 국어 시간에 설명문이나 설득하는 글의 구조를 배운다. 각 구조마다 어떤 내용을 써야 하고, 왜 그런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지 하나씩 익힌 다음 실전에 돌입한다. 다 배웠으니 이제 아이들이 직접 글을 쓰기만 하면 되는데 쉽지 않다.

써야 할 글의 주제를 알려주면 아이들은 대체로 크게 한숨을 쉬고는 분량을 묻는다. '몇 줄이나 써요?', '다섯 줄만 쓰면 안 될까요?', '더 짧게 써도 되나요?' 글을 얼마나 써야 할지로 한차례 줄다리기를 마치고 나서야 글쓰기에 돌입한다. 교실에 정적이 찾아오면서 책상에 코를 박은 채 끙끙거리는 아이들의 정수리가 보인다. 글을 썼다 고치며 어떻게든 몇 줄이라도 쓰려는 아이들의 노력이 가상하다. 완성된 글을 다른 아이들 앞에서 발표까지 시키는 건 가혹하니까 선생님만 보기로 하고 글을 걷으며 수업을 마친다.

평소에 하던 방식의 지루하고 공포스러운 글쓰기 시간을 벗어나기 위해 이번에 새로운 시도를 했다. 이름하여 맛있는 글쓰기. 과자를 주제로 한 오감 활용 글쓰기다. 아이들에게 먹을 거리는 절대적인 영향력이 있다. 과자나 캔디류를 수업시간 보상으로 사용하시는 선생님들이 종종 있는데 효과 만점이다. 행동 교정이 어렵던 아이도 과자 앞에서 장사 없다. 수업에 열광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는 데도 좋다. 단, 보상으로 과자를 자주 쓰면 약발이 떨어져서 적당히 써야 한다는 주의 사항이 있다.

한 주를 마치며 다음주 수업 안내를 할 때 글쓰기 수업이 있음을 알렸다. 순간 아이들의 표정이 돌처럼 굳는 게 보였다. 곧이어 준비물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과자'라고 말하자 몇몇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는 게 보였다. 과자를 싫어하는 학생이 있을까봐 살짝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외국과자도 되느냐, 어떤 종류든 과자면 다 되는 거냐. 질문이 쏟아지더니 딱딱하게 굳어있던 얼굴에 웃음기가 돌기 시작했다.

과자를 먹으며 느껴지는 맛을 묘사하는 내용이 글에 들어가야 해서 대면 수업으로는 진행하기 어려웠다. 애물단지 같던 쌍방향 온라인 수업이 이럴 때 도움이 됐다. 수업 당일이 되자 다들 일찌감치 모니터 앞에 앉았다. 아이들의 동기를 끌어 올리기 위해 먼저 과자 스무 고개를 했다. 한명이 과자의 모양, 색, 맛, 냄새, 촉감 등을 말하고 다른 아이들이 맞추는 활동이었다. 수업이 절정으로 치달은 건 화면을 끈 채 과자 asmr을 진행할 때였다. 과자를 씹으며 내는 소리를 듣고 어떤 종류인지 맞춰야 했는데 점잖은 6학년 친구들이 서로 발표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좋아하는 과자를 관찰하고, 오감으로 체험하며 묘사하는 글 한편을 쓰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미각으로 관찰한 내용이 글에 들어가야 하므로 수업 시간 내내 과자를 먹었다. 평소 같았으면 분량으로 우는 소리를 냈을 법한 아이들도 묵묵하게 글 한바닥을 뚝딱 써냈다. 수업이 끝난 후 아이들이 제출한 글을 보면서 즐거웠다. 작가가 즐겁게 쓴 글은 독자에게도 즐거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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