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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우마차로 넘던 남양주 ‘차유령’… 지금은? ‘차산리고개’

① 이름의 유래와 변천

 

남양주시에서 수년 전만 해도 눈만 오면 차량통행이 금지되던 곳이 있었다. 바로 차산리 고개다. 그만큼 구불구불하고 가파르기 때문이다.

 

차산리 고개는 화도읍 차산리와 와부읍 월문리를 잇는 국지도 86호선에 위치한다. 내리막길은 1차선, 오르막길은 2차선으로 구분돼 있는 이 고개의 옛이름은 ‘차유령’(車踰領) 또는 ‘수레넘어고개’다.

 

‘차유령’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전국 곳곳에서 전해지고 있다. ‘수레로 넘나드는 고개’를 일반적으로 일컫는 명칭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남양주에 있는 ‘차유령’ 즉, 차산리 고개는 언제부터 이렇게 불려지게 됐을까.

 

남양주시립박물관 김형섭 학예사의 도움을 받아 유래를 살펴봤다.

 

1570년(선조3) 4월 10일 전 자헌대부(資憲大夫) 호조판서(戶曹判書) 숙민공(肅敏公) 유강(兪絳)이 죽자 고개 근처에 묘소를 정하고 장사를 지냈다. 이후 1639년 증손 유성증(兪省曾1576∼1649) 공이 강원도 관찰사로 재임할 때 숙민공의 산소에 석물 및 신도비를 세우고자 와부읍 덕소에서부터 우마차로 운반해 고개를 넘었다고 한다.

 

그 뒤, 이 고개의 이름을 ‘차유령’ 또는 ‘수레넘어고개’라고 했다는 유래가 전해진다. 차산리 고개길 인근에는 유성증 공이 당시 세운 것으로 보이는 신도비가 지금도 있다.

 

남양주시의 ‘차유령’이 처음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기계 유씨( 杞溪兪氏)가 입향하기 이전부터 ‘동국여지승람’과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나온다.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연산군(燕山君) 12년(1506) 2월 2일’ 조에는 연산군이 명을 내려 금표를 정하도록 명한 기록이 나온다.

 

남양주의 경우 지금의 수종사(水鍾寺)가 있는 수종산(水鍾山)을 한계로 삼았고 백성들의 길을 통제한 뒤 덕연(德淵)·차유암(車踰巖)·구라역(仇羅驛)을 거쳐 가평과 통행하게 했다. 여기서 ‘덕연’은 지금의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이고 ‘차유암’은 ‘차유령’을, ‘구라역’은 대성리 인근에 있었던 ‘굴운역’을 각각 가리킨다.

 

험준했던 ‘차유령’은 관동지역을 오가는 문인들의 작품에도 등장한다.

 

남양주의 역사인물인 정사룡(鄭士龍, 1491∼1570)의 ‘호음잡고(湖陰雜稿)’ 권3, ‘차유령(車踰嶺)’에서 ‘… 차유령은 대체 몇 고개 있는가.…’(車踰凡幾嶺)라는 시의 한 구절이 나온다.

 

정사룡은 조선 전기 시풍을 변화시킨 관각삼걸(館閣三傑)의 한 사람으로, 시문에 능해 중국에까지 이름을 널리 알린 인물로서 남양주시 다산동에 묻혀 있다.

 

‘차유령’은 험준한 고개로 문학적 소재에도 등장할 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까지 동쪽을 왕래하는 통로로 주목됐다. 특히 도성으로 들어가는 하나의 고갯길로 자리했기에 도성을 수비하는 중요한 요충지로 인식됐다.

 

1808년(순조 8) 서영보(徐榮輔)‧심상규(沈象奎) 등이 왕명에 의해 간행한 ‘만기요람’(萬機要覽)에는 경기 지역의 군사요충지를 기록하면서, 가평과 통한다는 마치현(지금의 남양주 마치고개)과 함께 차유령과 구곡천(九曲遷)을 동쪽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중요시했다.

 

그리고 이같은 유래의 ‘차유령’은 지금의 ‘차산리 고개’ 또는 옛부터 불리웠던 ‘수레넘어고개’라는 이름과 함께 행정구역 ‘차산리’로도 자리잡게 됐다.

 

[ 경기신문/남양주 = 이화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