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4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아침보약] 병명- 몸을 바라보는 시선에 관하여

 

“이렇게 힘든데 검사해봐도 이상이 없다고 하고 그런데 아프고 치료해도 낫지 않는것이 힘들어요.”

 

그녀는 종합병원에서 온몸을 스캔하듯이 한 심전도, 심초음파, MRI, 면역학적 검사까지 포함한 가능한 모든 혈액, 소변등의 실험실검사를 포함한 여러 검사상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대해서 힘들어했다. 검사상 이상이 없다면 그건 아직 혈액검사나 가타 영상검사 등에서 측정될 정도의 물질적, 기질적 변화가 없다는것이니까 이제 기능적인 부분에 대해서 치료만 잘하면 되기 때문에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말은 그녀에게 전혀 닿지가 않았다.

 

사실 그녀는 산부인과에서 이미 다낭성난소증후군과 질염, 위염, 경추디스크 진단도 받았다. 다만 그 병명과 그에 대한 약들은 그녀가 가슴을 비롯한 몸의 여러부분에서 두근거리고 목구멍이 답답해서 잠을 자지못하고 다리와 둔부, 목과 어깨 등 전신의 여러군데에서 발생하는 고통에 도움을 줄수 없었다. 그녀는 내원시 심한 우울과 중등도의 불안소견을 보였는데 그녀가 가장 불안한 원인은 무슨병인지 모르는데 힘든 증상들이 있는것이라고 하였다. 그녀는 피임약을 다시 복용하기 시작하고서부터 두근거림이 다시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그 피임약은 정맥혈전의 부작용이 있는 약이기도 했다.

 

나는 그녀를 한의학적인 병명 태음인 식체비만(食滯痞滿; 소화기능이 저하되어 체하여 답답한 증상과 이로 인해 대사가 저해되고 호르몬등 자궁기능에까지 영향을 줄수 있다), 정충(두근거림)으로 진단하고 한약을 처방하고 침치료등를 하였다. 치료중 그녀의 몸이 한의학적 관점으로 왜 아픈지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렇게 쉽지않았던 두근거림과 통증 그리고 불안이 호전중인 어느날 그녀는 “원장님 오늘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자궁의 물혹이 안보인다고 해요. 그리고 저 임신이라고 하는데요.” 라고 하며 놀라워 했다.

 

이름에는 인간이 세계를 인식해 왔던 누적된 경험들이 내재해 있다. 몸의 어떤 고통에 붙이는 이름인 병명 또한 몸에 관한 인식이 담겨 있다. 19 세기 이후 자리 잡은 근현대서양의학의 진단은, 즉 의학적 앎의 방식은, 주체의 경험과는 상관없이 세계는 실재한다는 전제 위에서 진행이 된다. 보고, 듣고, 물어보고, 촉감해서 진단[망문문절(望聞問切)의 사진(四診)]하는 한의학은 몸의 경험을 통한 세계에의 앎이 전제되어 있다. 인류학자 김태우교수는 위와 같이 병명에 대해서 고찰하며 메를로 퐁티를 인용하여 ‘한의학 병명에는 현상을 고정하고 대상화하지 않기 위한 동아시아 전통의 방향성이 내포되어 있다. 질병현상이 명확한 기표에 의해 고정된다는 것은, 메를로-퐁티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현상의 장”의 심각한 축소를 의미한다.’고 하며 ‘한의학에서의 병명은 질병현상을 고정하기 보다는 어떤 양태의 병리, 생리 스펙트럼을 주시하라는 가이드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한의원의 현장, 이 작은 공간에서 병명- 몸을 바라보는 시선-과 함께 동서양의 인식이 충돌하고 교차하는, 인류학적 흥미로운 시선을 느끼며 다시 일상의 문을 열고 하루를 시작한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