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가을 어느날 새벽, 임필성 감독은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다 심장이 뛰는 화면을 발견한다. 한국의 남극탐험대가 무보급 남극 횡단을 시도하다가 대원 하나가 다치자 갈등 끝에 대장(허영호)이 포기를 선언한 뒤 울음을 터뜨린다는 내용의 다큐멘터리였다.
그 순간 임 감독의 머리 속에는 수많은 아이디어가 꼬리를 물고 떠오르면서 한계상황에 부딪힌 탐험대원들이 욕망의 원형질을 드러내며 파국으로 치닫는다는 서스펜스 호러 영화 아이템으로 정리됐다.
그러나 나중에 '남극일기'로 구체화된 이 기획안을 입밖에 꺼낸 것은 1년 뒤였다. 1년 넘게 준비해오던 데뷔작을 덮고 다른 아이템을 묻는 제작자에게 제안한 뒤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좀처럼 진행이 되지 않았다. 2001년 9월 뉴질랜드로 날아와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아날로그 효과를 맡고 있는 웨타워크숍과 합작에 관해 협의하고 로케이션 장소도 점찍어두었으나 그해 대작 영화들이 잇따라 실패하자 이듬해 5월 제작사가 포기를 통보해왔다. 시나리오는 좋은데 위험성이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신생회사로 제작사를 바꿔 새롭게 준비에 나섰다. 2003년 1월 충무로 캐스팅 영순위나 다름없는 송강호와 유지태가 캐스팅됐다. 뉴질랜드와의 협의도 순조롭고 피터 잭슨 감독도 협조를 약속했다. 그런데도 일은 잘 풀리지 않았다. 제작사가 탄탄한 곳(싸이더스)으로 바뀌었으나 '지구를 지켜라'의 흥행 참패로 또다시 절망적인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그래도 임필성 감독은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악에 받친 오기였는지도 모른다. 다행히 '살인의 추억'의 성공으로 싸이더스가 회생하면서 투자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올드보이'의 성공까지 겹쳐 이른바 '웰메이드 영화'에 관객이 몰린다는 게 확인되자 '남극일기'를 주목하는 사람이 더욱 많아졌다.
2004년 5월 25일. 감격적인 크랭크인이었다. 시나리오는 9번째, 프로듀서는 9대째다. 다음달 뉴질랜드로 날아가 현지 적응훈련을 거친 뒤 7월 5일 촬영을 시작했다.
비록 출발이 늦기는 했으나 일단 첫발을 내디딘 후로 지금까지 '남극일기'의 여정은 순조롭다. 예정대로라면 25일 한국으로 출발해 2주 휴식기간을 거친 뒤 남양주 종합촬영소에서 10월 말까지 촬영을 끝낼 예정이다. 컴퓨터 그래픽, 현상, 녹음 등이 마무리되면 내년 설쯤 마침내 극장에 간판을 내걸게 된다. 임 감독에게는 '도달불능점'처럼 여겨지던 고지가 눈앞에 와 있는 것이다.
기획기간만 4년 반을 끌어오는 동안 시나리오는 여러 버전으로 바뀌었으나 주요 등장인물과 줄거리의 얼개는 바뀌지 않았다.
이야기는 남극의 '도달불능점'(남극대륙 해안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남위 82도 8분, 동경 54도 58분에 위치한 지점으로 1958년 소련 탐험대가 단 한 차례 정복했음)을 향해 6명의 남극탐험대가 행군하던 중 대원 하나가 크르바스(눈에 덮여 보이지 않는 빙하지대의 갈라진 틈)에 빠져 목숨이 위태롭게 되자 나머지 대원들이 가까스로 끌어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타이틀 자막 후 이어지는 화면은 활기 넘치는 텐트 안. 베이스 캠프로 대원들의 소식을 위성 인터넷으로 전송한다. 노련하고 냉철한 대장 최도형(송강호), 극중 화자(話者) 격인 막내 김민재(유지태), 최대장의 오랜 파트너인 부대장 이영민(박희순), 식사 담당 양근찬(김경익), 통신 담당 김성훈(윤제문), 전자장비 담당 서재경(최덕문)의 면면이 자연스럽게 하나씩 소개된다.
이들은 행군 도중 1922년 영국 탐험대가 남긴 남극 탐험 일기를 발견하고 얼마 있지 않아 재경이 바이러스가 없는 남극에서는 도저히 발병할 수 없는 감기 증세를 보이다가 낙오한다. 재경이 실종되자 대원들은 그를 버렸다는 죄책감과 한시바삐 구해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는데 대장은 계속 목표를 향해 행군할 것을 지시한다. 이때부터 대원 사이의 갈등을 노골화되고 예기치 않은 사고까지 일어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