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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행 칼럼] 정치는 밥입니다

-K형에게

 

 

 

 

형은 정의당을, 나는 민주당을 찍었습니다. 촛불 혁명 이후 말입니다. 형과 나는 동시에 낙망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맘 둘 정당이 없다고 씁쓸해했습니다. 형은 정의당이 대학 동아리보다 못하다고 혀를 끌끌 찼고, 나는 민주당이 무능력한데다 새로움이 없다고 분개했습니다.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실토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우리는 비판했습니다. 그 말에 따르면 정치는 더 이상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정치적 동물인 인간은 허망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무한 시장 경쟁주의인 신자유주의를 있는 그대로 본 노 전 대통령의 솔직한 심정을 모르지 않습니다.

 

권력은 과연 시장으로 넘어갔을까요? 정치는 하위범주일까요? 정치는 경제를 변화시킬 수 없는 걸까요? 전 세계적 현상인 살인적 경제 양극화는 조금이라도 좁힐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일까요?

 

형과 나는 치열하게 논쟁했습니다. 촛불이 세운 문재인 정권마저 양극화를 심화시킨 것을 보고 우리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세계적 저금리에 따른 유휴 자금의 발 빠른 이동 등 부동산 가격 상승의 기초 조건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문정부의 숱한 정책 제시에도 부동산 폭등을 막아내지 못해 여전히 정치가 경제 불평등 완화에 무력하다는 것을 드러냈습니다.

 

정치는 경제 불평등 완화에 어떤 힘도 발휘할 수 없는 것일까요? 형은 그렇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긍정했고, 나는 그렇지 않다고 부정했습니다. 형은 현실 정치인들의 한계를 말했고, 나는 정치와 정치인을 구별해서 생각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형은 현실 정치인들을 시쳇말로 그놈이 그놈이라고 보았습니다. 나는 '그놈'들을 견인해서 좋은 정치를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작년에 출간돼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토마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한 마디로 축약했습니다. '정치가 경제를 변화시켰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실증 보고서'. 실제 유럽과 미국의 경우 상위 소득 10% 상류층에 집중된 부의 비율은 1950~1980년대 시기가 1980~현재보다 거의 절반가량이나 적었습니다. 피케티는 "거의 모든 선진국이 1950~1980년에 상위 소득과 자산에 60~90%의 (높은 누진)세율을 적용했다"(616쪽)며 현재 경제 불평등의 원인으로 누진세율의 대폭 축소를 제시합니다. 이는 정치가 공동선을 지향하면 빈부 격차를 현격하게 줄일 수 있다는 명백한 역사적 실례입니다.

 

그런데 형은 1950~1980년과 같은 호시절은 쉽게 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정치인들의 권력 의지가 공동선이 아닌 출세주의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시민들의 역동성과 나에 기반한 다원주의가 정착해 얼마든지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고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우리는 첨예하게 대립했지만 피케티가 정리한 것처럼 정치가 경제 불평등을 완화시켜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습니다. 큰 틀 못지않게 디테일한 것도 중요한 시대입니다. 4·7보궐 선거 이후 정치적 소용돌이가 깊은 곳부터 일기 시작합니다. 두렵고 흥분이 입니다. 우리는 고려 보조국사 지눌 스님의 말을 정리의 말로 대신했습니다.

 

"우리는 넘어진 자리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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