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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최장기 복역

독립투사의 인간적 내면세계 담은 사료

일제시대 최장기 복역 독립운동가로 광복후 친일파 청산운동을 주도했던 정이형(鄭伊衡 1897∼1956) 선생이 옥중에서 딸에게 보낸 서신이 63년만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아버지로서 자식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미안해 하고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딸의 장래를 걱정하는 마음이 가득 담긴 이 편지는 독립운동가의 영웅적인 대외활동이 아니라 인간적인 면모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선생이 일제에 항거하다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마포형무소에 복역하던 1941년 당시 이화여고보 3학년에 다니던 맏딸 문경씨(서울 성북구 정릉)에게 보내기 위해 쓴 이 편지는 불온하다는 이유로 배달되지 못했다가 광복 후 문경씨에게 전달돼 이번에 공개될 수 있었다.
옥중에서 외부 유출이 불허 된 서신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목숨까지 내걸고 일제에 맞설 정도로 강인했지만 딸과 관련해서는 걱정과 고민을 숨기지 않았던 독립운동가 아버지의 내면세계를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수원대 사학과 박환 교수는 "지금까지 연구는 항일투쟁에 초점이 맞춰져 독립운동가의 전체적인 모습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었으나 이번에 외부유출이 금지된 서신이 공개됨으로써 단순한 영웅이 아닌 인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독립운동가의 진면모를 그려낼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선생은 이 편지를 통해 딸에게 주변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정조관념을 지키고 타락한 시대상에도 불구하고 학문과 인격도야를 위해 힘쓸 것을 당부, 여느 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일제 말 급격한 서양문화의 유입과 기성질서에 대한 반발심리 등으로 성윤리가 문란해진 세상에 노출돼 있는 딸을 걱정하면서 아버지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과 애절함이 편지에 물씬 배어있는 것이다.
편지에는 또 학창시절의 품행은 일생을 좌우하는 만큼 본인은 물론, 독립운동을 하다 투옥된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행동거지에 각별히 신경쓸 것을 바라는 부정(父情)도 담겨져 있다.
선생은 1920년대 만주지역의 대표적 독립운동단체인 대한통의부, 정의부 등에서 무장투쟁을 주도했고 1925년 3월에는 정의부 의용군 제6중대장으로서 벽동(碧潼)경찰서 여해(如海)경찰출장소를 습격해 일본 순사 3명을 살해했다.
선생은 또 정당조직을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1923년 다물청년당을, 1926년에는 만주 지린(吉林)에서 국내외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를 망라하는 고려혁명당을 조직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선생은 1927년 하얼빈(哈爾濱)에서 일경에 붙잡혀 신의주로 압송돼 재판에 회부됐으나 법정에서 독립운동가임을 밝히고 불공정한 재판절차에 강력 항의하는 등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 일화로도 유명하다.
1927년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열린 1차 공판에서 "나의 직업은 독립운동이다"라고 밝힌 뒤 자신의 입장을 자세히 공술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자 심리를 거부하는 등 일제의 법정신문에 끝까지 굴하지 않고 저항했던 것이다.
선생은 1928년 4월 20일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평양과 서대문, 마포, 대전 형무소 등을 전전하며 옥고를 치르다가 광복으로 출옥할 때까지 무려 18년5개월17일간 투옥돼 일제하 최장기 복역수로 기록됐다.
해방 이후에는 남조선과도입법의원으로 활동하며 부일.반역.전범.간상배에 대한 특별법의 제정을 주도하는 등 친일파의 척결을 위해 투쟁했으며 남북협상에 참가하는 등 통일운동에도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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